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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소멸 극복, 주거 플랫폼에서 시작된다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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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마을 길을 걸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풍경이 비로소 가까이 다가왔다.

빛바랜 정류장은 사람의 온기를 잃은 지 오래였고, 빈집은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거렸다.

도시의 불빛은 더욱 화려해져 가지만, 마을의 풍경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낯선 발걸음에 짖어대는 개 소리조차 반갑기만 하다.

한때 통계 속 숫자에 불과했던 지역소멸의 경고는 이제 일상의 풍경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퍼지고, 변화에 대한 의지를 삼켜버리는 무기력이 지역을 잠식하고 있다.

충북 영동군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발걸음이 오가던 길은 조용해지고, 빈집은 늘어가며 마을의 숨결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이 품은 잠재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끌어낼 강력한 행정적 리더십이다.

2022년 심천면 초·중학교의 폐교 위기를 막기 위해 영동군과 LH 충북본부가 추진한 '주거 플랫폼 사업'은 지역 재생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23년 완공 목표는 흐려졌고, 사업은 아직도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

더딘 추진은 주민들의 무기력을 더욱 깊게 만든다.

반면 전국 곳곳에서는 이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남 신안군은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도 '삶의 기반'을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

작은 섬에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방치된 빈집을 정비해 새로운 주민을 맞을 준비를 갖췄다.

태양광 수익을 활용한 '햇빛연금' 정책까지 연계해 주민의 소득 안정도 확보했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 골목에는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괴산, 의성, 함양, 전주, 제주에서도 빈집 정비와 청년 주거, 고령친화 서비스, 생활 인프라를 결합한 다양한 주거복지 모델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주거 기반이 지역 재생의 첫 단추임을 말해준다.

이제 주거 플랫폼 사업은 선택이 아니라 군수와 군의회가 함께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전략적 과제다.

결단이 지연될수록 빈집은 늘고, 사람은 떠나며 공동체의 회복 비용은 더 커질 것이다.

반대로 군이 방향을 세우고 지역 정치 리더십이 힘을 모은다면 변화는 훨씬 빠르게 현실이 된다.

주거 플랫폼은 집을 짓는 사업이 아니다.

방치된 빈집을 지역 자원으로 되살리고, 청년·귀향인·근로자를 위한 주거 기반을 마련하며 돌봄·생활 서비스·커뮤니티 기능을 결합해 지역의 생활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이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행정의 비전과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

지역소멸의 뿌리는 단순한 일자리 부족이 아니다.

사람이 살 이유와 기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집이 있어야 사람이 오고, 사람이 있어야 관계가 생기며 관계가 모일 때 공동체는 다시 살아난다.

주거 플랫폼은 그 변화의 첫걸음이다.

사라져가는 지역을 지키는 일은 거대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지도자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고서나 구호가 아니라, 행정이 먼저 나아가는 용기와 리더십이다.

작은 집 한 채에 불이 켜지면 그 불빛은 옆집으로 번지고, 골목 전체에 온기가 퍼진다.

영동군이 먼저 그 불씨를 지핀다면 잊힌 길 위에는 다시 발자국이 생기고, 떠났던 마음들도 돌아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지역은 무기력을 벗고 스스로 내일을 만들어갈 힘을 되찾게 될 것이다.

박행화 영동 심천중 교장 지역소멸,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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