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세종물류센터 안에 게시된 사내하청업체 우진물류 소속 전 직원에 대한 해고 통지서. 금속노조 지엠부품물류지회 제공 |
그들이 처음부터 노조를 만들려던 건 아니었다.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폭발한 건 지난해 1월이었다. 한국지엠(GM) 사내하청업체인 우진물류 소속으로 지엠세종물류센터에서 일한 120명은 ‘연차휴가 없는 노동자’였다. 그곳에서 몇 년을 일했든 상관없었다. 물류센터 안에서 부품포장 파트를 업무를 맡아 지엠 정규직과 함께 일했지만, 매해 도급·고용계약이 갱신되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에게 ‘쉴 권리’ 따윈 보장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대로라면, 입사 1년 뒤 15일의 연차휴가를 쓸 수 있고 3년을 근속하면 1년에 하루씩 연차도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지엠과 1년마다 도급계약을 갱신해 일거리를 따는 우진물류는 직원들 고용계약도 매해 갱신하며 연차 발생을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해도, 모든 직원은 동등하게 해마다 퇴사하고 다시 입사한 신입 취급을 받았다. 회사가 그들에게 공식적(?)으로 허용한 건 그달 일해야 하루 생기는 ‘월차’와 지엠 직원들 쉴 때 함께 쉬는 일주일(주말 포함) ‘여름 휴가’뿐이었다. 그래놓고 연말엔 근속에 따라 연차 일수를 계산해 연차보상비라며 돈을 줬다. 연차휴가는 없는데 연차보상은 있는 ‘기괴한’ 시스템이었다.
그나마 있는 월차도 마음 편히 쓸 순 없었다. 회사의 작업 물량 압박으로 연차나 조퇴를 쓰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연차·조퇴계를 낼 때 ‘사유를 자세하고 분명히’ 쓰게 하고, 사유가 불분명하면 반려하기도 했다. 어떤 작업반은 게시판에 그날 휴가·조퇴자 이름과 사유를 붙여놓기도 했다. 회사 압박 속에 ‘잔업’이 당연시되기도 했다. “아기가 아파서 잔업을 못 하고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동료에게 “너만 애가 있냐”는 비수가 꽂히기도 했다.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같은 처지의 동료끼리 ‘살아남으려’ 상처를 주고받았다.
새해 첫날이자 해고 첫날인 지난 1일 최현욱 금속노조 지엠부품물류지회 사무장이 ‘집단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점거 농성장에서 새해맞이 떡국을 배식받고 있다. 최예린 기자 |
그러다 지난해 그들은 더 궁지로 몰렸다. 지난 9일 지엠세종물류센터에서 만난 최현욱 금속노조 지엠부품물류지회 사무장은 “재작년까지는 그나마 유도리가 있었다. 사정이 급하면 발생할 월차를 미리 당겨 쓰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았다. 그런데 회사가 2025년부턴 무조건 이미 발생한 월차만 쓸 수 있다고 공지를 한 거다. 모든 직원이 무슨 일이 있어도 매해 1월엔 휴가를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우진물류 소장을 찾아가 지금 휴가 제도 문제점을 따졌다. 최 사무장은 “회사마다 다 사정이 다르다며 되레 저에게 모르면 네이버에 물어보라고 하더라. 고용노동부에까지 상담한 뒤 다시 찾아가 말해도 ‘그게 아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며 도돌이표 대화만 반복됐다. 한두명이 산발적으로 항의해봤자 절대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이 점점 커졌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젊은 직원 12명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결성 논의가 시작됐다. 노조를 만들려다 회사 압박으로 실패한 전례가 있었기에 모의는 비밀리에 이뤄졌다. 석 달의 가슴 졸이는 준비 기간을 거쳐 7월3일부터 노동조합 가입 원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다음날 회사는 전 직원을 2층 교육장을 불러 모았다. 그 자리에서 회사는 “노조 만들지 마라. 노조 만들면 성과금 안 나온다, 회사 없어진다”고 직원들을 회유했다고 한다.
최 사무장은 “우진물류 회장이 전 직원을 모아놓고 어린아이들 대하듯 ‘여러분, 노조 안 만드실 거죠? 대답을 안 하시네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직원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 교육이 끝나자마자 노조 가입 원서를 달라고 찾아오는 직원이 많았다”고 했다. 노동조합 설립(7월5일) 닷새 만에 120명 중 116명이 노조원이 됐다.
노조 설립 한 달 뒤 처음으로 ‘임금·단체 협약’ 협상도 시작했다. 노조 설립 발단이 된 ‘휴가 제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신규 직원 4명을 채용하기로 노사 합의도 이뤄졌다. 애초 노조가 ‘지엠 정규직 채용’이나 ‘정규직과 동일 임금’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노조 요구 사항은 ‘호봉 인정과 매해 지엠 정규직 인상분만큼의 임금 인상’이었다. 사내하청업체 소속이란 이유로 지엠세종물류센터에서 몇 년을 근속하든 신입직원과 기본급이 같은 상황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임금 부분을 놓고 임단협이 교착 상태에 빠진 10월에서야 지엠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그러자 한국지엠 본사가 바로 움직였다.
지난 9일 오전 세종시 연기면의 지엠부품물류센터 앞에서 ‘지엠부품물류 하청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종교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그 자리에서 성서대전의 전남식 목사는 “56년 전 평화시장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절규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고. 반세기가 지난 2026년 오늘, 한국지엠(GM)은 여전히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기계 부품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
노조를 찾아온 한국지엠 본사 임원은 ‘20년 전 옛날얘기’를 꺼냈다. “20년 전 옛날에 뭣 모를 때 노동조합이 생기면 우리가 업체를 바꿔서 선별 고용 승계하고 난리가 나서 막 싸우고 그런 적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찾아와서는 “이제 우리(한국지엠)랑 얘기하자”며 “파업을 예고했는데, 좋지 않다. 우리도 지엠 정규직화를 원만하게 잘 정리하겠다고 (글로벌 지엠에) 보고하고 있는데, 파업하는 건 거기에 초를 치는 것”이라고 회유했다. 이런 노조와 본사 임원과의 면담 내용은 녹취로 남아있다. 노조 탈퇴·소송 취하 조건과 함께 근무 연차 상관없이 신입사원 대우로 예외 없이 다른 지역(인천 부평·경남 창원·충남 보령)에서 근무를 전제로 ‘지엠 정규직 채용’을 제안한 것도 한국지엠 쪽이었다고 한다.
한국지엠과 향후 협의를 약속한 상태에서 노조는 ‘신의를 지킨다’며 11월 중순 예정된 파업 일정을 미뤘다. 그리고 2주 뒤인 11월28일 우진물류는 ‘도급계약 종료’를 사유로 폐업 공고와 함께 전 직원 해고를 통보했다. 그렇게 노조 설립 반년 만에, 그들은 모두 ‘해고자’가 됐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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