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
“반구대 암각화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한 끝에 관계 지자체들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암각화라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과 세계 인류가 찾을 수 있는 유산 지역으로 만들어내자는 합의가 이제 한걸음을 확실히 뗀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0월29일,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는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이렇게 장담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연 뒤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은 뒤였다. 협약식에는 반구대암각화시민모임 김종렬 대표, 한정애 환경부 장관, 송철호 울산시장, 김현모 문화재청장, 박재현 수자원공사 사장이 함께했다. 합의 내용의 핵심은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암각화의 침수 방지를 위한 대곡천 하류 사연댐 여수로의 수문 설치 공사, 지역 간 이해를 바탕으로 한 낙동강 통합 물관리 방안에 따른 이수 대책 등이었다.
반구대 암각화 하류에 있는 사연댐 전경. 울산시 제공 |
핵심 합의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지금 진척된 건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 외엔 사실상 없다. 환경부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당시 협약식 보도자료에서 호우 때마다 암각화를 잠기게 한 원인이 된 대곡천 하류 사연댐의 수문 3곳 설치를 2025년 7월까지 완료한다고 공언했다. 이 방안대로라면 지금 사연댐 수문은 이미 뚫려 암각화 물고문은 사라졌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수문 설치는커녕 암각화는 세계유산 등재 직후 몰아친 극한호우로 7월19일부터 8월24일까지 36일간 수몰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수문 설치 공사 시점은 뒤로 밀려 2030년 12월로 잡혀 있지만, 착공 시기는 올해 하반기 정도로만 이야기할 뿐 여전히 미정이고 언제 완공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정황이 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당시 정치인들이 세계유산 등재라는 지상 목표를 위해 유네스코의 환심을 사려고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허한 실행 계획을 식언처럼 제시한 셈이다.
지금 상황도 부조리하다. 오는 7월 부산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데 그 기간 호우가 내려 잠겨도 아무런 실효적 대책이 없다. 비가 안 오기만 기원하는 상황이다. 중앙정부가 물 문제를 담보하고 댐을 폭파·해체하는 등의 극단적 요법을 쓰는 것 말고는 6개월 안에 호우로부터 암각화를 지킬 어떤 대책도 사실상 불가능한 처지다. 환경부와 수자원공사는 최대한 시점을 당기겠다는 말만 할 뿐 댐의 수문 설치 공사를 언제 착공할지, 구체적인 준비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질이 없다.
지난해 7월19일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암벽의 모습. 8월1일 찍은 사진으로 8월24일 전모가 다시 드러날 때까지 암각화는 36일간 물속에 잠겨 있었다. 노형석 기자 |
이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것이 사연댐의 수위를 낮출 경우 포기해야 하는 4만9000톤의 용수 문제다. 가까운 청도 운문댐 물로 대체해야 하는데, 현재 이 댐의 물을 용수로 쓰는 대구시가 안동댐이나 구미 취수장 등의 용수로 대체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확정적으로 계획을 잡을 수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지자체끼리 정치적으로 협의해 해결해야 할 부분인데, 이 부분이 난항을 겪고 있어 수문 설치 공사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된다. 한마디로 정치적 이해 관계가 소중한 세계유산의 명줄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 사이의 정치적 문제는 전체 국가 재정을 관할하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서서 정리하고 풀어야 한다. 4년 전 합의 때도 수문 설치라는 합의를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미진하게 대응해 명확한 해결책을 내지 못했고, 그 후과가 지금도 이어져 침수의 비극을 되풀이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23일 울산시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민들의 타운홀 미팅이 열린다. 반구대 암각화 침수 피해 방지 문제는 가장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로 언급될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이 되면서 지역 여론은 바뀌고 있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물 문제가 한번 훼손되면 영영 복구할 수 없는 암각화 유산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기류가 압도적이지 않고, 댐을 전면 해체하거나 조속한 착공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8월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시민들의 타운홀 미팅에서도 이런 기류는 여실히 확인된 바 있다. 소통력이 남다르다는 이 대통령이 시민들과 국가유산청 쪽 이야기를 충실히 듣고 대체 용수 확보 대안에 대한 중앙정부 방침과 사연댐 수문 공사의 착공 시점 등에 대해 명확하게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대화의 의미는 클 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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