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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식들아, 그날 가장 품위 있던 말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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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박대준 전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오른쪽은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 연합뉴스

지난해 12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박대준 전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오른쪽은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 연합뉴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당신은 의분에 찬 욕을 뱉어본 적이 있는가? 욕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는 경우를 당해본 적이 있는가? 욕은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를 거르지 않고 뱉어내는 최적의 직설화법이다.



지난해 12월30일 국회 청문회장. 5년 전 쿠팡 물류센터에서 과로사한 스물일곱살 청년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방청석에 앉았다. 아들이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회장 김범석씨의 엽기적 지시에 대해,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미국인 대표의 회피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가슴이 썩어들어 갔다. 마이크 앞에 선 어머니가 처음 내뱉은 말. “재판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개자식들아. 진짜 죄송합니다.”



위원장을 ‘재판장’이라 부를 만큼 떨렸다. 앞뒤의 사과는 시민으로서 예의를 갖추려 했던 눈물겨운 노력이다. 하지만 그 사이의 욕은 새끼 잃은 어미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의 표명이었다.(통역사는 이 말을 미국인 대표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점잖은 언론은 이를 ‘개○○들아’로 교정하거나 아예 “제발 김범석을 잡아주세요”라는 다른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지만, 그날 청문회장에서 가장 진실되고 품위 있는 언어는 바로 그 욕이었다. 사람을 죽게 만든 시스템과 그것을 덮는 세련된 말들이야말로 진짜 야만이다.



모든 사회는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는 법을 미리 정해놓았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과 행동으로 애도를 표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슬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슬픔을 인정하지 않으니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그럴 때 사람은 야수가 된다. 종교보다도 깊다는 거룩한 분노를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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