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으로 가족을 잃거나 다치게 된 피해자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위자료 소송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과거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사실상 추가 소송을 막아왔던 사정을 고려하면, 가족들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려웠던 기간에는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아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사건은 1990년대 제정된 보상법에 따라, 5·18 관련자 본인이나 유족이 보상금을 받은 경우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으로 본다는 규정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5·18 피해자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21년, 이 같은 규정이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까지 막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피해자 가족들은 “그동안 법 때문에 소송을 낼 수 없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했지만, 국가는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맞섰고, 하급심도 이를 받아들였다.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소멸시효는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고 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객관적·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을 때부터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경우 보상금 수령 과정과 당시 법 해석 관행상, 가족들로서는 위자료 소송이 가능하다고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봤다.
이번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할 때 ‘권리행사의 객관적·합리적 기대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했다. 단순히 법률상 장애가 있었는지 여부에 그치지 않고,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과 국가가 보상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권리행사를 사실상 어렵게 만든 사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노태악 대법관은 반대의견에 보충의견을 덧붙여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대법관은 “‘권리행사의 기대 가능성’을 근거로 시효 진행을 제한하는 다수의견은 소멸시효 제도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구제는 사법적 판단보다는 입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선영 기자 earthgir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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