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단독] 한덕수 1심 판결문에 드러난 ‘12·3 계엄의 밤’…尹 “내 妻도 모른다”

조선일보 오유진 기자
원문보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 1심 판결문에는 한 전 총리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 고위 각료들의 12·3 비상계엄 전후 행적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22일 본지가 확보한 한 전 총리의 내란 혐의 1심 판결문은 총 348쪽 분량이다. 이 중 재판부 판단이 담긴 본문(125쪽)에 ‘윤석열’이 300여 차례, ‘이상민’이 170여 차례, ‘김용현’이 140여 차례 언급됐다. 223쪽 분량의 별지에는 국무회의 참석자 등 관련자들의 진술과 대통령실 CCTV 영상을 ‘초 단위’로 분석해 기록해 놨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증거 능력을 가려 한 전 총리의 실제 의중을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尹 “계엄 선포, 내 ‘처’도 몰라”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계획을 재고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생각을 바꿔 ‘계엄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로 건의했다”고 판시했다.

판결문 별지에 담긴 한 전 총리 진술에 따르면, 그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의사가 확고해 보였고, 제 만류에도 ‘계엄 선포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그대로 두면 대통령 뜻대로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 ‘국무회의라는 장치를 통해 법률가이자 정치인인 윤 전 대통령을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한 전 총리 등은 계엄 선포 예정 시각이었던 밤 10시 안에 대통령실에 도착할 수 있는 국무위원들을 중심으로 소집하기 시작했다. 밤 8시 56분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과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가 원래 국무위원들도 안 부르고 그냥 (계엄) 선포하려고 하다가 부른 것이다. 내 처도 모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상민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사실로 인정

판결문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혐의(내란 중요 임무 종사)와 관련한 내용도 상당 부분 담겼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이 전 장관과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 이행 방안을 논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 전 장관에 대해서도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서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가 기재된 문건을 교부받았고 그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지호 전 경찰청장, 허석곤 전 소방청장 등 관련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이는 다음 달 12일로 선고가 예정돼 있는 이 전 장관 내란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에는 이와 관련한 이 전 장관의 구체적인 행적도 나온다. 계엄 당일 밤 9시 13분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이 전 장관이 휴대전화로 ‘헌법’을 검색한 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밤 9시 19분에는 ‘정부조직법’을 검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헌법’을 검색해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언론의 자유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찾아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후 ‘정부조직법’을 검색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에게 봉쇄와 단전·단수 조치 등 업무를 지시할 법률상 근거가 있는지 찾아봤다고 봄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당일 대통령실 CCTV에는 이 전 장관이 밤 9시 16분 대접견실에서 조태열 전 장관과 대화하며 왼손 손날로 무언가를 연달아 내려치는 동작을 4차례 취하고, 10분 뒤 윤 전 대통령도 집무실에서 나와 같은 동작을 2~3차례 하자 이 전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찍혔다. 재판부는 “이러한 동작은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바, ‘단전·단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며 “이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것은 ‘동의한다’ 내지 ‘따르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고 했다.

◇김재규·이석기 내란 판례 인용...“폭행·협박 없어도 내란 종사자"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가 성립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김재규 내란 살인 사건과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두 사건은 내란의 개념과 가담 범위를 정립한 대표적인 판례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종북 척결’을 이유로 계엄을 정당화했지만, 사법부는 그와 무관하게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행위를 내란으로 동일하게 평가한 셈”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재판부는 내란을 가능하게 한 행정·조정 역할도 공범에 포함된다고 보고 한 전 총리가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서 ‘중요 임무 종사자’는 보급, 경리, 연락, 통신, 서무 등의 책임을 부담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며 반드시 폭행·협박을 수반할 필요는 없다는 김재규 내란 살인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과 내란 중요 임무 종사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미필적 인식으로도 충분하다고 봤다. 이 역시 이석기 등 내란 음모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를 인용한 것으로, 피고인 진술만이 아니라 외부로 드러난 행위와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전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오유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차은우 200억 탈세 의혹
    차은우 200억 탈세 의혹
  2. 2쿠팡 ISDS 중재
    쿠팡 ISDS 중재
  3. 3평화위원회 출범
    평화위원회 출범
  4. 4박철우 우리카드 삼성화재
    박철우 우리카드 삼성화재
  5. 5이수혁 팬미팅 해명
    이수혁 팬미팅 해명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