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는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 |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김주환 박형빈 기자 =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이 22일부터 시행됐다.
AI 관련 부분 규제가 아닌 포괄적 법령으로는 세계 최초 시행이다.
AI 기술이 이제 막 개화하려는 시점에서 규제법이 생겼다는 데서 AI 모델·서비스 개발 업계에서는 '고영향 AI 사업자 책무'·'AI 사용 표시 의무' 등 당장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딥페이크·허위 사실 유포·인권 침해 등 고도화된 AI의 폐해로부터 사회를 지킬 규범이 필요하다며 업계 우려를 고려해 정부의 사실 조사권이나 과태료 부과를 1년 이상 유예하는 등 '연착륙'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 AI 산업 진흥과 규제 두 마리 토끼 노렸다
이 법은 AI의 건전한 활용을 위해 국가가 AI 업계를 지원하는 한편 폐해가 예상되는 위험한 AI의 활용은 예방하는 데 방점을 뒀다.
진흥책을 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3년마다 AI와 관련 산업의 진흥,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AI기본계획을 세워 시행하도록 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법정 위원회로 승격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AI 사업자의 창의 정신을 존중하며 관련 제품·서비스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도록 했다.
규제책으로 정부는 AI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고 안전한 이용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도록 했다. 아울러 AI 안전성·신뢰성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 교육, 홍보를 지원해야 한다.
[그래픽] '세계 최초 시행' AI 기본법 주요 내용 |
AI 기본법은 AI 기술·산업 등과 관련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며 AI에 관한 포괄적이고 상위적인 지위를 가짐을 명시하고 있다.
AI 등 디지털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대표적 기존 법규인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이 AI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며 규제 공백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AI 기본법을 낳았다.
전기통신사업법의 이용자 이익 침해 금지 조항으로는 AI·알고리즘이 일으키는 차별 등 새로운 형태의 피해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 정보의 '유통'과 '공개'를 전제로 설계된 정보통신망법은 정보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생성해내는 AI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인식 등이 토대가 됐다.
◇ 업계 '촉각' 고영향 AI·워터마크 규정 보니
AI 업계가 AI기본법 중 영향이 가장 크다고 꼽는 조항은 고영향 AI, AI 사용 표시(워터마크), 설명 가능 의무 등으로 압축된다.
고영향 AI는 의료, 에너지, 채용, 대출 심사 등 국민의 생명이나 권리에 큰 영향을 주는 분야의 AI를 말하며 AI 사업자는 이들 분야의 AI 사용에서 사람이 관리하는 체계를 만드는 한편 안전성 확보 조치에 나서야 한다.
현재로서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 4 이상 차량 정도만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다만 업계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 고도화에 따라 의료, 에너지, 채용 등 분야에서 고영향 AI 규제를 받는 서비스의 출현이 그다지 먼 미래의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고영향 AI 판단 기준 |
AI기본법에 따라 고영향 AI나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려면 AI에 기반해 운용된다는 사실을 이용자에게 사전에 알려야 하고 생성형 AI 결과물은 표시해야 한다.
특히 콘텐츠 업계가 우려하는 조항인데 AI를 부분적으로 활용했어도 'AI에 의한 창작물'이라고 표시되면 콘텐츠의 가치가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시행령에는 AI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 등에서의 생성물 표시를 기계만 알아볼 수 있는 메타데이터로 넣는 것도 허용했지만 생성형 AI 기술이 활용됐음을 1회 이상 안내 문구, 음성 등으로 알리도록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수정됐다.
비가식적 표시로는 딥페이크물 등을 구별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와서다.
과기정통부는 "AI 생성물에 대한 워터마크 적용은 딥페이크 오용 등 기술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최소 1년 이상의 충분한 계도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AI 기본법은 또 AI에 영향을 받는 이가 AI 최종 결과 도출에 활용된 주요 기준 및 원리 등에 대해 기술적·합리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명확하고 의미 있는 설명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른바 설명 가능((Explainability)한 AI여야 한다는 건데 선언적 규정으로도 해석된다. 블랙박스로 묘사될 정도로 복합한 AI 생성·추론 과정을 명시할 수 있는 기술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구글 정도만 보유하고 있다는 게 AI 업계 중론이어서다.
◇ 정부 "사실조사·과태료 1년 이상 유예"…"불안 여전"
과기정통부 장관은 AI 기본법이 정한 AI 생성 사실 표시, AI 위험 관리 체계 구축, 고영향 AI 사업자 책무 등을 위반했거나 위반했다는 신고·민원이 접수된 경우 해당 사업장에서 장부·서류·자료 등을 조사할 수 있는 사실 조사권을 가진다.
AI 사용 여부를 고지하지 않은 경우나 해외 AI 업체가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 최대 3천만원을 부과할 수 있다.
다만, 법 시행이 이제 갓 싹트는 국내 AI 업계의 발전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자 정부는 사실 조사권 발동과 과태료 부과를 1년 이상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규제법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와 아직 산업적으로 여물지 않은 AI를 다루면서 규정 여러 곳에서 빈틈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AI 업계는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법규 대응 여력이 큰 대기업보다 중소·스타트업계의 걱정이 더 크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AI 생성물 표시 의무의 구체적인 방식, 주체, 범위가 시행령과 고시에 위임되어 있어 사업자 입장에서는 사전에 리스크를 계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령, 영화 제작사가 AI 서비스를 이용하면 AI 서비스 개발이 아닌 이용의 주체일 뿐이어서 표시 의무를 지지 않고 AI 사용 표시를 임의로 삭제할 수 있다.
시행령에서 비가식적 워터마크가 허용됐다가 음성·문자 알림 규정이 추가된 사례에서처럼 규제 실효성이 의문시될 수 있다. 이에 개정 필요성이 대두될 경우 사업자들은 다시 불확실성에 노출된다는 이야기다.
딥페이크 (PG) |
AI기본법이 시행령만 421페이지에 달하는 등 규정이 방대하고 복잡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AI라는 신기술을 새로운 법에 담으려다 보니 당국이 대형 로펌 변호사 등으로 꾸려진 법제정비단과 법을 만들었는데, 중소·스타트업들은 로펌에 법 해석을 자문할 비용적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호소도 많았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하위법령 제정에 참여한 전문가로 구성된 지원 데스크를 운영하기로 했다.
◇ 확률형 게임 공개 의무화 땐 명확한 방법·기준 줬다
AI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는 게임업계에서도 AI 기본법 시행이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AI 투명성 확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게임은 '예술적·창의적 표현물'로 인정돼 전시·향유를 저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지 또는 표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표시 방법, 적용 범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2024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개정 게임산업법이 시행될 당시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구체적인 확률 표시 방법과 기준을 제시해 업계의 혼선을 줄인 바 있다.
한 국내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은 플랫폼 자체 규정에 따라 AI 사용 여부를 표시하고 있다"면서도 "모바일이나 국내 플랫폼 기반으로만 서비스하는 게임은 어디까지 어떻게 표시해야 할지 여전히 의문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게임업계 정책·대외협력 담당자도 "단순히 AI 생성물을 활용한 게임이 있는가 하면, 서비스 내에 AI 모델을 탑재한 게임까지 활용 사례가 다양한데 업계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모호하다"며 "1년간의 처벌 유예기간이 있긴 하나 여전히 부담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용민(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자체 AI를 탑재하거나 외부 모델을 API로 호출해 서비스하는 사업자만 규제 대상일지, 개발 과정에서 사용하는 경우까지 포함할지 등 여부를 게임 사업자라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규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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