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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아무도 책임 안지는 서울버스 파업

조선일보 김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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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2025년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합의문에 서명했다. 추운 날 노조가 이틀간 총파업을 벌인 끝에 나온 합의문이었다.

버스 기사 임금을 2.9% 올린다는 간결한 합의문에 실망했다. 노조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인 합의문이었다. 임단협 교섭이 1년 넘게 이어진 원인인 통상임금이나 임금 체계 개편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협상 과정을 보며 허탈함마저 느꼈다.

전국의 다른 지역 시내버스 노조들은 지난해 임단협을 체결하며 임금 체계를 개편하는 대신 10% 수준으로 임금을 올리는 데 합의했다. 시내버스 회사 적자를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보전해 주는 ‘준공영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들의 월급이 오르면 투입하는 세금도 늘어나는 식이다.

그런데 서울 시내버스 노조는 그들이 요구한 선에서 한 발도 양보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인상분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했다. 노조가 “불필요한 서울시 예산을 줄여 우리에게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결국 이틀간 버스를 멈춰 세운 끝에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노사는 통상임금 문제를 민사 소송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법원이 노조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면 이들의 임금은 19%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면 서울 시내버스 기사의 평균 연봉은 약 6300만원에서 단숨에 7500만원까지 오른다.

최종 교섭 직전까지도 “임금 체계 개편은 불가피하다”고 했던 사측은 파업이라는 무기를 앞세운 노조에 끌려다니다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합의문을 보며 ‘적자가 났을 때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면 이런 식으로 교섭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돈줄’을 쥐고 있는 서울시도 무책임했다. 서울시는 협상 기간 내내 “우리는 직접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며 사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뒤에도 오세훈 시장은 “노사 모두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며 남 일 대하듯 노사 모두를 꾸짖었다. “노조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면 시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던 김병민 부시장의 말도 노사가 하루 만에 노조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공염불이 됐다.

이미 매년 6000억원가량 적자를 보전해 주고 있는 서울시는 앞으로 1년에 1800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곧 올해 임단협이 전국 곳곳에서 시작될 텐데, 이번에 서울시가 남긴 ‘나쁜 선례’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진 않을지 걱정이다.

파업이 끝나고 버스가 돌아오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진작에 월급을 제대로 올려준다고 했으면 노조가 파업을 하진 않았겠다.” 월급을 올려주기 위해 필요한 돈. 그 돈을 낼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로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김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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