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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선진국의 내란은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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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징역 23년 판결이 한국 민주주의에 남긴 것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사법부가 12·3 비상계엄 사태를 ‘내란’, 더 정확히는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며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단순한 개인의 유죄 판단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 수준과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반복해 강조한 핵심은 분명하다. “선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친위 쿠데타는 기존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형량의 무거움을 설명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헌법과 법치를 훼손하는 권력의 일탈은 더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는 원칙 선언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군사정권의 과거에 머무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력, 성숙한 시민의식,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일상화된 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헌법을 경시하고, 군과 경찰을 동원해 의회와 선거 관리 기구를 압박했다면 그 파장은 과거의 어떤 내란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이 한국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단기적 충격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 성숙이다. 전직 국무총리에게 선고된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충격을 회피하는 체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충격을 제도 안에서 흡수하고, 원칙으로 전환하는 체제다. 법원이 “계엄 기간이 짧았고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가담자의 책임을 덜어주는 사유로 삼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해가 제한적이었던 것은 권력의 자제 덕분이 아니라, 시민의 저항과 현장의 양심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에 분명한 기준을 남겼다. ‘경고성 계엄’, ‘잠정적 계엄’ 같은 표현은 헌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이 임의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에서 계엄은 편의가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며, 최후의 수단일수록 더 엄격한 통제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판결은 그 기본 원칙을 다시 헌정 질서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더욱 서글픈 대목은 한덕수라는 인물의 이력이다. 그는 50년에 가까운 공직 생활을 통해 ‘관리형 관료’, ‘안정의 상징’으로 평가받아 왔다. 정치적 야심보다 행정의 연속성을 중시해 온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계엄을 반대하며 “공직 50년에 누를 끼치지 말라”고 만류했던 최상목 당시 부총리의 경고는, 지금 와서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 말이 받아들여졌다면, 한 사람의 인생도, 한 나라의 헌정사도 다른 방향으로 기록됐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한덕수 전 총리는 50년 공직 생활의 마지막 장에 가장 무거운 오점을 남겼다. 개인에게는 비극이고, 국가에게는 경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험 많은 관료’라는 이력은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의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이번 판결은 분명히 했다. 권력의 정점에 가까울수록, 헌법에 대한 충성은 개인적 판단이나 정치적 계산보다 앞서야 한다.


이번 판결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명확히 그었다는 점이다. 군과 경찰을 동원해 헌정 질서를 흔드는 순간, 그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설령 실패했더라도 내란으로 평가된다는 기준이다.

이는 향후 어떤 권력자에게도 분명한 경고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신뢰로 작동하지만, 그 신뢰를 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다.

다만 이 판결이 정치적 승패의 도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상대를 몰아붙이는 재료로 전락할수록, 판결의 의미는 퇴색된다.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다. 계엄 요건과 절차에 대한 제도적 재정비, 군과 경찰에 대한 헌법 교육 강화, 공직자의 위법 명령 거부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는 판결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판결 이후의 제도와 문화가 그것을 완성한다.

진리와 정의, 자유는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기본과 원칙, 상식이 작동할 때 비로소 유지된다. 인간과 문화, 자연을 존중한다는 말 역시, 권력이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질서를 해칠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실현된다.

한덕수 징역 23년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처이자 동시에 면역 반응이다. 아프지만, 그 아픔 덕분에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

“선진국의 내란은 더 무겁다”는 말은 처벌의 과시가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집단적 다짐이어야 한다. 그 다짐이 제도와 문화로 이어질 때, 이번 판결은 비극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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