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5일 경찰이 정치권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했던 경기도 가평군 통일교 천정궁 일대. 연합뉴스 |
이세영 | 정치부장
제주에서 나고 자라 광주에 정착한 아버지는 1980년대 내내 운동권 목사였다. 4·3과 5·18을 모두 겪은 그에게 영적 구원에 매진하는 목회자의 길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바리새적 위선이나 매한가지였다. 방언도 신유의 은사도 없는 아버지의 예배는 건조하기만 했고, 독재자와 군인 권력을 저주하는 당신의 설교는 교회의 터줏대감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들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복음서 구절을 인용하며 아버지의 목회를 힐난했다.
교인들의 불만이 아버지를 바꿔놓진 못했다. 서울 출타가 잦아졌고, 그때마다 가져오는 철필 등사물엔 ‘산업선교’ ‘해방신학’ ‘녹화사업’ ‘고문’ ‘의문사’ 같은 낯설고 무서운 말들이 가득했다. 정권은 그 시절 개신교 사회운동을 불온한 정치 목사들의 망동으로 낙인찍어 뒷조사와 집요한 와해 공작을 펼쳤고, 학살자 전두환을 축복했던 이름난 목사들은 ‘성직자의 본분’을 이야기하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고 종주먹을 쥐었다.
‘정교분리’가 종교적 계율이 아닌 세속의 헌법 조문임을 내가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 그것은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20조의 두번째 항에 속해 있었다.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흥미로운 건 이 조문이 헌법에 들어간 배경이었다. 조문은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미군정 사법부 법전기초위원이자 고려대 법학 교수였던 유진오가 미군정청의 ‘조선 인민의 권리에 관한 포고’ 제10조(“국교는 없으며, 교회와 정부는 분리된다”)에서 가져왔는데, 그 뿌리는 미국 수정헌법 1조 ‘국교 부인’과 ‘종교의 자유’에 관한 조항이었다. “연방 의회는 국교를 수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제임스 매디슨을 위시한 미국의 건국 주역들이 연방헌법에 이 조항을 넣은 이유는 명확했다. 기독교의 특정 교파가 국교로 지정되면 다른 교파는 불이익을 받게 되고, 결국엔 시민의 종교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국교 신봉을 거부하다 박해를 받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에게 이 조항은 다른 어떤 권리 조항보다 절박한 법적 안전장치였다. 그리고 이 국교 부인 조항은 미군정을 통해 한국에 이식되면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가 첨언된다. 시민이 종교 자유를 누리려면 ‘국가 종교’가 있어선 안 되며, 국가(정치)와 종교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어 국가가 시민의 종교적 삶에 개입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 구조였다.
문제는 이렇게 탄생한 ‘정교분리’ 조항이 ‘종교의 자유 보장’이란 본래 취지를 벗어나 종교인과 종교단체의 정치 참여를 막거나 제한하는 근거로 오용됐다는 사실이다. 실제 한국에서 정교분리론은 오랫동안 정권과 보수 종단이 양심적 종교인들의 정치 활동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논거였다. 개신교 사회운동이 태동한 1970년대부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선언이 시민 저항의 돌파구를 열었던 2010년대 중반까지 줄곧 그랬다.
이 전도된 정교분리론이 최근에는 ‘민주’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재활용된다. 이들의 정교분리론이 겨냥하는 건 통일교와 신천지의 정치인 금품 제공과 국민의힘 경선 개입 의혹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나서 ‘정교분리라는 헌정 질서의 근본을 어지럽힌 중범죄인 만큼, 혐의가 입증되면 문제가 된 종교 법인은 물론 이들과 유착한 정당까지도 해산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최근엔 “사이비·이단은 척결해야 할 사회악”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주문한 국무총리 발언까지 나왔다.
당·정·청의 수뇌들이 한달 새 쏟아낸 종교 관련 발언이 문제적인 건 시민의 권리 보호를 위한 헌법 조문을 일탈적 소수집단과 경쟁 정당에 대한 정치적 규율 수단으로 남용하려 든다는 데 있다. 특정 집단을 ‘이단’으로 규정해 파문하고 징벌하는 일은 국가가 아닌 종교의 영역이다. 종교단체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정치 영역에 개입하다 세속의 법규를 위반했다면, 국가는 실정법이 정한 만큼 심판하고 처벌하면 그뿐이다. 형법과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은 그러라고 있는 거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 순간, 모두가 곱씹어야 할 예수의 말이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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