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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걍 냅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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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한파가 닥칠 거래서 지붕에 올라가 연통을 속으로 박박 긁어 청소하고, 장작개비를 거실 구석에 바삐 들였다. 구워 먹을 고구마도 쟁여뒀고, 나이를 거꾸로 먹고도 싶어 떡국 봉다리도 샀지. 기막힌 눈구경을 원없이 했으면 바라. 일기예보 가지고도 나는 이리 호들갑을 떠는데, 솔숲은 또 대숲은 꿩이나 힝힝 울고 무심하게 자울댈 뿐이야. 성근 바람에 마른 건초가 살짝 뒤척이는 게 고작이다. 이 숲은 마치 충청도 사람들처럼 무심하고 태평해. 여름날 충청도 어디서 수박을 파는 장꾼의 대화. “저기요 이 수박 어떻게 파세요?” “고 가생이 수박 말여유? 팔겄쥬. 안 팔 거믄 멀라 놔둬꺼슈.” “잘 익은 거겠죠?” “지대루 익었겄쥬. 안 익었음 수박 탓이지 내 탓이거슈?” “달겠지요? 안 달면 어떡해요.” “그람 달겄쥬. 안 달어두 수박 맛은 나겄쥬 뭐.” “만원만 깎아주세요.” “걍 냅둬유. 개나 줘불쥬 뭐.”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세상이다만 재밌는 능청엔 솔깃해진다. 나는 충청도 말로 뱉는 ‘냅둬유’가 맘에 쏙 들어. 요새 애들은 뭐라드라 “알빠노~” 내 알 바 아니니 알아서 하세유~ 냅두고 무신경으로 살고 싶다만.

나라 걱정 하는 분들 보면 정말 애가 타서 죽는 형국이더라. 애국이 지나쳐 어느 자리나 정치판 돌아가는 얘기. 간만에 만났는데, 그간 어찌 지냈나 궁금도 할 텐데, 정치나 종교 얘길 시종 꺼내. 실천 없이 말로 풀어대는 정치나 종교의 해악을 아는 까닭에 자리가 어서 파하길 바랄 뿐. 종교인이 종교 얘길 하기 싫어하니 내 인생은 진작에 ‘걍 냅둬유~’ 그 자체렷다. 그저 하늘이 이끄는 대로 흘러서 왔어, 생사를 비롯해 내 뜻대로 원대로 풀리는 게 어딨나. ‘냅둬유’는 그래서 절반이 기도이며 겸양이 아닐까. 냅두라고 해서 정말 냅두면 또 삐진다. 비틀면서 살갑게 다가서란 말인 줄도 알아차리면, 오호! 빙고.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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