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도, OTT를 열어도 ‘연애’ 관련 프로그램이 부지기수다. 솔로로는 변별력이 없는지 엄마가 함께 참여하는 맞선 형식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어떤 대화 자리에서는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이 한참 이어진단다. 연애 못지않게 최근에는 ‘이혼’ 관련 프로그램도 적잖다. 이혼한 연예인들이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프로그램도 여럿이다. 이혼을 쉬쉬하던 세상은 저 멀리 사라졌고, 이혼이 그만큼 흔해진 세상이라는 방증이겠다. 연애든 이혼이든 프로그램을 찾아보지는 않지만, 대략의 내용은 짐작한다.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더 좋은 상대를 찾기 위해 애쓰면서, 안성맞춤인 상대를 찾았을 때는 ‘별도 달도 따줄 듯’할 것이다. 반면 이혼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백이면 백, 상대방 탓만 할 게 분명하다. 물론 상대편이 100% 잘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자기 탓이 ‘1’도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1952년 발표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 세계 연극무대에서 끊임없이 상연되는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참전한 바 있는 사뮈엘 베케트는 부조리한 세계의 단면을 주인공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을 통해 세밀하게(어쩌면 장황하게) 투영한다. 떠돌이인 두 사람은 만나면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렇다고 마냥 허튼소리도 아닌, 도통 의미를 찾기도, 부여하기도 힘든 대화들뿐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늘 이렇게 끝난다. “가자./ 갈 순 없다./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고도가 누군지 정체도 모르면서 두 사람은 “오늘 안 오면 내일” “내일 안 오면 모레”, 심지어 “그 뒤라도 계속” 기다리기로 한다. 고도가 ‘희망’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조차 진위를 따지기 어렵다.
얼마 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으며 의미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의미 있는’ 대목을 하나 발견했다. 오랜 노숙 때문에 발이 부은 고고는 구두를 힘겹게 벗고는 “발에 바람을 좀 쐬어야겠다”고 말한다. 옆에 선 디디가 별것 아닌 듯 한마디 던진다.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순간, 세상 모든 일에 ‘남 탓’만 하는 게 인간이구나, 그게 바로 부조리구나, 싶었다. 사뮈엘 베케트가 어떤 의미를 심고자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책의 해석이야 읽는 사람의 것이니, 이런 의미 부여도 나쁘지 않겠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1952년 발표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 세계 연극무대에서 끊임없이 상연되는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참전한 바 있는 사뮈엘 베케트는 부조리한 세계의 단면을 주인공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을 통해 세밀하게(어쩌면 장황하게) 투영한다. 떠돌이인 두 사람은 만나면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렇다고 마냥 허튼소리도 아닌, 도통 의미를 찾기도, 부여하기도 힘든 대화들뿐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늘 이렇게 끝난다. “가자./ 갈 순 없다./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고도가 누군지 정체도 모르면서 두 사람은 “오늘 안 오면 내일” “내일 안 오면 모레”, 심지어 “그 뒤라도 계속” 기다리기로 한다. 고도가 ‘희망’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조차 진위를 따지기 어렵다.
얼마 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으며 의미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의미 있는’ 대목을 하나 발견했다. 오랜 노숙 때문에 발이 부은 고고는 구두를 힘겹게 벗고는 “발에 바람을 좀 쐬어야겠다”고 말한다. 옆에 선 디디가 별것 아닌 듯 한마디 던진다.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순간, 세상 모든 일에 ‘남 탓’만 하는 게 인간이구나, 그게 바로 부조리구나, 싶었다. 사뮈엘 베케트가 어떤 의미를 심고자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책의 해석이야 읽는 사람의 것이니, 이런 의미 부여도 나쁘지 않겠다.
ACT 김낙수(류승룡) 부장도 남 탓이 체질이었다. 도진우(이신기) 부장이 이끄는 영업2팀에 비해 영업실적이 떨어지는 건 직원들 탓이었다. 막내 직원이 실력을 발휘해 보고서를 올려도 “우리가 늘 쓰는 빨간색과 다르잖아”라며, 급기야 자기 노트북까지 들고 와 타박한다. 디테일까지 챙기는 멋진 상사가 아니라 꼰대의 전형으로 보이는 건 불문가지. 임원이 못 된 건 선배 탓, 아들이 엇나가는 듯 보이는 건 아내 탓, 상가를 구입한 건 사기 분양 탓 등등 김 부장의 남 탓은 차고 넘친다. 원작과 다르지만, 남 탓은 줄이고 각성한 인간 김낙수로 재탄생한 결말은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흔히 ‘내 탓이오’ 기도문으로 알려진 천주교의 ‘고백 기도’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탓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중 몇몇을 ‘내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마음의 크기가 한 뼘은 더 자랄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서도 내 깜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원고 메일 보내는 일을 한참이나 미뤘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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