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 갓 독립한 서른에 나는 인생 다 안다고 믿었다. 위험천만하게도 나와 관계 맺던 자들의 내면까지도 알겠다고 믿었으니, 돌이켜보면 그 젊음이 아찔하다.
그때부터 쭉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세상이 급격히 바뀌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내가 처음 살던 집은 이젠 갤러리가 되었고, 수도가 있던 마당엔 건물주의 벤츠가 주차되어 있다. 갓 서른, 내가 인생을 다 안다고 느꼈던 그 시절, 그 집엔 다양한 삶을 살아온 열 가구가 있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 집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강렬해 나는 소설 쓰는 친구들에게 각색해서 잘 써보라며 열심히 글감을 제공했지만, 일찍이 대성한 작가들도 그것을 소화하지 못해 글로 남기지 못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내부까지 훤히 보이는 맞은편 건물도 갤러리가 되었다. 우리나라 사설 화랑을 대표하는 갤러리가 삼사 년 전 매입한 그 건물과 넓은 정원을 지금은 한 후원단체가 참신하게 운영하고 있다. 후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의 갤러리라 그런지 오랜 주민인 나도 그곳의 혜택을 받고 있다. 차도 없는 내가 그곳에서 후원해준 차고를 활용해서 넓은 의미의 공동체를 위해 유익하게 쓰다 보니 요즘엔 후원이니 나눔이니 하는 말이 화두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그때부터 쭉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세상이 급격히 바뀌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내가 처음 살던 집은 이젠 갤러리가 되었고, 수도가 있던 마당엔 건물주의 벤츠가 주차되어 있다. 갓 서른, 내가 인생을 다 안다고 느꼈던 그 시절, 그 집엔 다양한 삶을 살아온 열 가구가 있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 집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강렬해 나는 소설 쓰는 친구들에게 각색해서 잘 써보라며 열심히 글감을 제공했지만, 일찍이 대성한 작가들도 그것을 소화하지 못해 글로 남기지 못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내부까지 훤히 보이는 맞은편 건물도 갤러리가 되었다. 우리나라 사설 화랑을 대표하는 갤러리가 삼사 년 전 매입한 그 건물과 넓은 정원을 지금은 한 후원단체가 참신하게 운영하고 있다. 후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의 갤러리라 그런지 오랜 주민인 나도 그곳의 혜택을 받고 있다. 차도 없는 내가 그곳에서 후원해준 차고를 활용해서 넓은 의미의 공동체를 위해 유익하게 쓰다 보니 요즘엔 후원이니 나눔이니 하는 말이 화두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집 앞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들이 좋아서 나는 집에 손님이 오면 보고 가라고 권한다. 한번은 생활이 어렵다는 작가의 작품이 워낙 마음에 들어 경제력 있는 친구들을 야심차게 불러들이기도 했다. 우린 과거에 형편이 어려운 작가의 작품을 어쩌다 한 번씩 산 적이 있고, 불러들인 친구의 가족 중에 예술가도 있으니 한 점 구매하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닐 거라 믿었다.
“이젠 가지고 있는 것들도 하나씩 없애야 하는 나이야.”
내 마음을 읽은 한 현명한 친구는 권하기도 전에 선을 그었다.
앞에서 언급한 두 건물과 정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는 곳에도 건물주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가 있다. 그 갤러리가 막 들어왔을 때는 전시가 잦았다. 어느 시점에서 점점 전시가 뜸해지더니, 이번 겨울 초입부터는 그림이 아닌 김치로 세계 곳곳의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엄청난 쓰레기를 볼 때마다 사업의 확장과 전환이 자유로운 자들의 의식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김치가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를 하나씩 손에 든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 갤러리의 변화가 거듭 신기하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우르르 걸어오는 사람들에겐 아무리 급해도 길을 양보한다. 그 많은 사람들을 재개발구역의 깊숙한 골목까지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은, 단연코 비범한 우리 문화의 누적된 힘일 테다.
곧 재개발이 진행될 궁궐 옆 주택가이지만,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고, 그들과 대체로 잘 지낸다. 경희궁 뒤뜰과 딱 붙어 있는 곳이라 궁궐에서 떨어진 낙엽을 쓸며 주민들은 재개발이라는 광풍이 불기 전, 과거의 훈훈한 기억과 떠나간 사람들을 간헐적으로 되새긴다. 가끔 선주민인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신주민도 있지만, 경계를 넘어오지 않는 한 우리는 서로서로 선한 이웃이다.
문화재가 많은 곳이라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건축법이 바뀌며 재개발이 이십 년 이상 지연되는 예민한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내가 청춘을 보낸 곳에서 오래도록 살다 보니 이곳에서 쌓인 기억들이 지금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기억도 아이처럼 성장하는 것임을. 그러니 지나가면 그만이라는 불성실한 태도로 남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임을. 기억 속에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늦은 화해를 하기도 하고, 외면하던 기억의 매듭을 짓기도 하면서 조금씩 홀가분해진다.
조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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