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차량이 시험운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업체 제공 |
불안함에 좌석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못했다. 뒷자리에 곧게 앉아 운전석에 앉은 이와 앞유리를 번갈아 살폈다. 자율주행 전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높여 서울 강남의 공사장 근처로 들어서자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신호수들이 도로 한가운데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는 부드럽게 멈춰선 뒤, 방향을 왼쪽으로 살짝 틀어 주행을 이어갔다. 뒤이어 들어선 골목길에서는 인도가 아닌 차도로 오는 사람을 피해 천천히 움직였다. 이내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경력 10년 차 운전자가 모는 듯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자율주행 전문기업 ㄱ사가 시험 운행 중인 이 차는 스포츠카가 왼쪽 뒤쪽에서 큰 굉음을 내며 달려오자 살짝 속도를 줄였고, 버스가 오른쪽에서 다가오자 차선을 한 번 변경해 거리를 유지하기도 했다. 최근 강남 일대를 10km가량 주행하는 약 1시간 동안 돌발 변수가 적지 않았지만, 운전자는 운전석에 앉아 있기만 할 뿐 어린이보호구역을 뺀 전 구간에서 운전대나 브레이크 페달을 단 한 번도 직접 조작하지 않았다.
이런 자율주행 시범 운행은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서울 강남구·종로구·중구, 부산시 등 전국 55곳을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로 지정해 실증 특례를 제공하고 있다. 실증 특례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조건에서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고 안전성 등을 시험·검증하는 제도다. 이들 지역에서는 지정된 노선·구간 중심으로 자율주행 스타트업 등이 시험 운행을 추진 중이다. 다만,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서만 실증이 가능하고, 이들 지역 상당수가 보행자나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여서 다양한 예외적 상황(엣지 케이스)에 대한 학습에 한계가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국토부는 이날 국내 첫 자율주행 실증도시로 광주광역시를 선정했다. 도시 전역에 관련 규제를 풀고, 대규모 주행 데이터 수집부터 특화 인재 양성까지 이어지는 자율주행 생태계를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광주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중국 우한처럼 도시 전역에서 24시간 실증이 가능해진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추진하겠다고 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자율주행 단계는 레벨0(완전수동)부터 레벨5(완전 자율주행)까지 6단계로 나뉘는데, 정부는 현재 레벨3(고속도로 등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하지만 기상이변 등 특정 상황에서 운전자 개입이 필요한 수준) 단계인 국내 자율주행 기술을 레벨4(대부분의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하며 운전자 개입이 불필요한 수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도시 전역을 시범운행지구로 일괄 지정해 골목길부터 고가도로, 지하차도, 교차로 등에서 다양한 엣지케이스 학습이 필요하다”며 “광주는 인구 130만명 이상의 대도시이면서 도·농 복합적 특성을 보유해, 다양한 환경에서의 대규모 실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행하기도 한다. 서울시의 ‘심야 자율주행 택시’가 대표적이다. 시는 강남 지역에 한정해 2024년 9월26일부터 이 택시를 운행해왔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1년여 넘는 기간 누적 탑승 건수는 6343건, 누적 운행 거리는 3만km다. 시는 무료로 시범 운영해 온 자율주행 택시를 이르면 다음달 안에 유료로 전환할 예정이다. 마을버스 형태의 자율주행차는 지난해 7월 동작구에서 운행을 시작했고, 같은 해 10월부터 운행 지역을 동대문구·서대문구로 확대했다.
다만, 국내 자율주행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절대적인 데이터양이 적기 때문이다. 미국 구글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서비스 웨이모 자료를 보면, 2천대가 넘는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는 이 기업의 지난해 9월 기준 누적 주행거리는 2억㎞를 웃돈다.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인 바이두는 1천대로 1억㎞ 이상 운행하며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전체 기업의 누적 주행거리는 1306만km에 불과하다. 운행대수도 132대에 그친다. 또한 한국은 스타트업 중심의 제한적 실증을 통해 무상운송·유인운행을 조건으로 한 시범 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중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유상운송·무인운행에 돌입해 사용자 경험과 주행 안정성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방해 요소가 없는 도로를 신호에 맞춰 단순 주행하는 데이터가 아니라, 공사 현장 인근, 보행자와 버스, 다른 차량의 진로 방해 등 실제 한국 도로에서 마주하는 변수에 대응하는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준원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엔드투엔드(E2E) 자율주행 기술(인공지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운전을 결정하는 방식) 개발을 기반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며 “정부는 기업들이 기술을 실증하고 이를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경쟁의 장을 만들어 기업들이 자유롭게 데이터를 쌓고 인공지능 모델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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