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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재생 함께 늘리면 10년 뒤 전력과잉→대정전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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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 한울원자력발전소 단지에 원전들이 줄이어 들어서 있다. 한울 단지의 경우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3, 4호기까지 포함하면 총 10기 원전이 배치된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울진 한울원자력발전소 단지에 원전들이 줄이어 들어서 있다. 한울 단지의 경우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3, 4호기까지 포함하면 총 10기 원전이 배치된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Q. 기후위기 시대 ‘무탄소 전원’인 원전(핵발전)과 재생에너지는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까요?



A. 한국 정부는 기후 대응을 위해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보급을 동시에 늘리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두 발전원은 공존을 위한 ‘동맹 전선’을 펴기보다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충돌하고 있죠. 단순히 ‘둘 다 늘리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발전원이 우리나라 전력망 안에서 공존하기 어려운 구조적 특징을 이해해야 합니다.



전력망 전문가들은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상극’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전기를 옮겨주는 전력망은 공급과 수요가 딱 맞아 떨어지는 조건에서만 작동한다는 특징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력망은 순간 수요에 맞춘 적정량의 전기가 흘러야 하는데, 한번 켜면 전기 생산을 멈출 수 없는 ‘경직성’ 전원인 원전과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불규칙한 ‘간헐성’ 전원인 재생에너지가 만나면 전력망 불안정이 커지고 심하면 대정전으로 이어집니다. 한번 달리면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원전)와 날씨가 좋을 때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재생에너지)를 한 도로(전력망)에 모아 놓고 사고가 없길 바라는 것 같달까요.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 100기가와트(GW) 확충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두 발전원 간 충돌은 극에 달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원전은 80% 중반대 이용률로 기저전원(항시 가동하며 기본 수요를 떠받치는 발전원) 지위를 유지 중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한 자릿수에 불과해 갈등이 본격화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2030년 이후 재생에너지가 전력 비중 30% 도달해 기저발전원 지위까지 넘보면, 원전은 상대적으로 가동률과 수익이 모두 줄어들겠죠. 원전업계가 재생에너지를 ‘불안정한 전원’이라 줄기차게 공격하는 것은 미래 수익에 대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전남 신안군 지도읍 일대에 150메가와트(MW) 대규모 태양광발전단지가 조성됐다. 전라남도 제공

전남 신안군 지도읍 일대에 150메가와트(MW) 대규모 태양광발전단지가 조성됐다. 전라남도 제공


그렇다면 서로 상극인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무작정 둘 다 늘릴 경우 어떤 ‘비극’이 벌어질까요? 전영환 홍익대 교수(전자전기공학)의 자문을 받아,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신규 원전 2기가 완공되는 시점인 2038년, 계획대로 대형 원전 32기(37GW 규모)와 재생에너지 설비(122GW 규모)가 공존하는 조건(계통 안전 비상전원 가스·석탄발전 등도 포함)에서 실시간 전력설비수요가 어떻게 변할지 시뮬레이션을 해봤습니다.



냉·난방 기기 가동으로 전력 수요가 80~120GW를 오르내리는 겨울·여름철에는 별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력 수요가 약 60GW까지 급감하는 봄·가을철엔 전력망 불안전성이 크게 심화했습니다. 출력 조절이 어려운 원전에서만 약 33GW의 전력이 공급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도 약 56GW 전기가 생산(시간대별 평균 출력률 적용)되면서, 전체적으로 29GW 이상의 전력 과잉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계통 안전을 위해 최소 수준으로 가동하는 가스·석탄 발전량까지 더하면, 봄·가을 낮 시간대에는 최대 37GW에 달하는 전력 과잉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1년 중 6개월가량 원전 가동률을 최소 20%까지 줄여 운영하거나 재생에너지의 출력을 60~70% 수준으로 강제로 제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재생에너지를 주력 발전원으로 쓴다는 정부의 기조대로 간다면, 원전 가동률이 떨어져 원전 발전단가가 기존 60원대에서 110원대로 두배 가까이 증가해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커질 것이고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삼으면서도 한쌍(2기)에 12조원이 넘는 원전을 함께 지은 결과, 전기요금은 전기요금대로 오르고 지어놓은 원전은 제대로 써먹지 못해 ‘좌초자산’이 되는 부작용을 겪게 되는 셈입니다.



전력수요가 줄어드는 봄철 발전원별 실시간 전력수급현황표. 주황색 부분인 원전이 기저전원으로 작동하고, 석탄(갈색)과 가스(노랑), 풍력(연두), 태양광(빨강·핑크)이 추가 수요를 뒷받침 하는 형식으로 전력 시스템이 운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30년 이후에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원전만큼 늘어나면 전력 설비 과잉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 전력거래소 누리집

전력수요가 줄어드는 봄철 발전원별 실시간 전력수급현황표. 주황색 부분인 원전이 기저전원으로 작동하고, 석탄(갈색)과 가스(노랑), 풍력(연두), 태양광(빨강·핑크)이 추가 수요를 뒷받침 하는 형식으로 전력 시스템이 운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30년 이후에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원전만큼 늘어나면 전력 설비 과잉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 전력거래소 누리집


세계 에너지 정책의 주류는,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확대하되 기존 원전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전제로 유지·관리하는 ‘재생에너지 중심+관리형 원전’ 기조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이미 신규 발전원 가운데 가장 저렴한 전원이 되었고, 건설 속도 또한 매우 빨라 전력 부족과 탄소 감축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죠. 반면 원전은 건설 기간이 10년 이상으로 길고 초기 건설비 부담이 매우 커 신규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전환’ 역시 기본적으로 이 흐름 위에 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확대에 신규 원전 건설을 덧붙이는 것은 더욱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발전원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여러가지 기술적·제도적 검토가 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전업계에서는 “2032년까지 출력제어 기술을 개발해 재생에너지와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은 “한국형 원전은 설계부터 출력제어를 고려하지 않은 모델이고, 출력제어가 가능하더라도 핵연료봉 안전성 훼손과 고장 위험 증가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섣부른 결론이 아닌,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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