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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하루] 건륭제의 ‘남순기’

서울경제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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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건륭제는 1784년 마지막 남순(南巡) 도중에 남쪽으로의 순례 여행이 지닌 의미를 신하들에게 선포했다. 1784년 4월 13일(음력 3월 24일) 발표한 ‘어제(御製) 남순기’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약 70일 동안의 긴 여정 끝에 강남의 중심지 항저우에 도착해 그 감회와 의미를 총결산한 것이다.

1784년은 건륭제가 제위에 오른 지 49년이 되는 해였다. ‘남순기’에서 건륭제는 이렇게 자신의 치세기를 중간 정리했다. “짐이 지난 50년을 지내면서 무릇 두 가지 대사를 거행했는데, 하나가 서사이고 다른 하나가 남순이다.” 여기서 건륭제가 스스로 손꼽았던 두 가지 큰일 가운데 ‘서사’는 서북 지역으로의 군사 원정으로, 몽골의 중가르 세력을 박멸하고 그 지역에 ‘새로운 강역’인 신장을 설치한 것이다.

그는 서사에 대해서 “빨리 해야 하고 늦춰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봤던 반면 남순은 “천천히 하되 서둘러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서쪽 변경으로의 군사 원정을 먼저 해결하고 남순은 1751년부터 1784년까지 총 6번에 걸쳐 수행했다. 마침 6이라는 숫자는 건륭제의 롤모델이었던 할아버지 강희제가 남순을 수행했던 횟수와 일치했다.


이처럼 신중하면서도 자주 남순을 해야 했던 것은 물관리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그는 “한 번이라도 물관리에 허술함이 있으면 백성의 생명이 그에 달려 있으니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직접 황태자와 신하들을 대거 동원해 지방 행차에 나섰다. 그리고 지방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직접 황제가 물관리의 현장을 답사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장면을 보고 감동하기를 기대했다.

그만큼 청 제국에 물관리는 중요했다. 물 문제의 핵심은 통제하기 어려운 황허강의 범람에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황허강에 종속된 대운하의 물자 유통에 있었다. 그렇지만 건륭제가 과연 ‘남순기’의 선언처럼 남쪽 지역 순방을 통해 물관리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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