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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 위주 중처법 과징금 전환…그 돈으로 영세사업장 지원"[논설실의 뉴스 진단]

파이낸셜뉴스 홍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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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필 前 고용부 장관 진단
정부 '노동개혁' 성공하려면
고용 안정성 확보 중요하지만
노동계 치우치면 기업기반 악화
해고·채용 유연화도 뒷받침 돼야
DJ처럼 진영내 설득 가능성 충분
언 발에는 뜨거운 물이 毒이듯
속도조절 통해 노사문제 풀어야
중대재해법 예외 5인 미만 기업
안전망 구축해 사망사고 줄여야
정년연장, 임금개편 연계 안하면
질 좋은 일자리 줄고 청년 소외
시행 앞둔 노봉법도 손질 필요
사용자 범위 확대 부작용 살펴야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9일 최근의 노동 현안과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9일 최근의 노동 현안과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노동개혁은 역대 정부의 국정과제 단골 메뉴였다. 늘 정책 리스트의 앞줄에 있었다. 그런데도 국민은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권리 밖 노동자 보호, 정년연장 등을 개혁과제로 포장해 쏟아내고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당근으로 고용의 안정성을 높인 뒤 저성과자 해고라는 유연성 제고를 추진하려 한 보수 정부와는 차이가 있다.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등 870만 비임금 노동자 보호조치가 알려진 지난 19일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69)을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신 노동 이슈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게 우선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노동개혁이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퉁퉁 튀며 반복됐을 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지난 보수 정부 노동장관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진정한 노동개혁이란.

▲한마디로 고용의 안정성, 유연성, 공정성을 높여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고용의 안정성 제고는 인기가 많지만 유연성 제고는 반대다. 보수 정부가 채용과 해고의 유연화라는 뜨거운 이슈에 손도 못 댄 것이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초래한 것 아닌가.

▲이유를 찾자면,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김현숙 고용복지수석,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지향하는 노동정책의 방향과 방법론, 강도가 다 달랐다. 파견법 등 민감한 법 개정에 합의도 안된 상황에서 정부 발표가 확정적인 것처럼 나오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다. '자폭'한 셈이다.


―저성과자 해고처럼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힘든 과제를 해내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아무리 그래도 친노동 성향인 현 진보 정부에서는 실현되기 힘들어 보인다.

▲과거 김대중(DJ) 대통령은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를 하고 근로자 파견제를 도입했다. 진영 내 설득이 가능한 진보 정부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현 정부도 마음만 먹으면 보수에 비해 노동계를 설득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수월하다. 다만 DJ도 IMF(외환위기)라는 위기가 없었다면 그 힘든 개혁이 가능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보수 정부는 노조를 기득권으로 보고 비판해왔다. 노조 조직률이 낮다고 해도 노동자의 상징적 대표이자 파트너로 인정하고 타협했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우리의 노조 조직률은 13%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전체를 대변하려면 '단결과 연대'가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대기업 협력업체 노동자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게 가능한가? 특고 종사자 등 근로자의 형태가 매우 다양한데 노조가 모두를 위한 대변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특고 프리랜서 등 소외된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로 '근로자 추정제'를 도입하려 한다. 다양한 노동자를 위한다는 관점이라면 정부의 최근 행보를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지 않나.

▲그런 접근을 하려면 근로자가 다양하다는 전제가 인정돼야 한다. 근로자 유형을 A, B, C, D로 나누고 그에 맞는 법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은 100m를 10초에 달리는 사람과 20초에 달리는 사람을 똑같은 운동선수로 간주하자는 것과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노란봉투법이 3월 10일 시행된다. 원청, 하청, 노조 간 권한과 책임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뀜에 따라 현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이다. 개별적이고 단발적인 사안에 대해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인정하는 사례는 있어도 이걸 전국적으로 적용하는 나라는 없다. 사용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이 문제부터 우선 해결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하청노동자도 실질적 지배권을 가진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쟁의 과정에서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해 단체행동권을 보호하려는 법이다. 재계는 원청의 책임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돼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반발한다. 반면 노동계는 하청노동자의 교섭력이 높아지고 분쟁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고 옹호한다.)

―우리나라의 노동 관련 법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르다는 말인가.

▲제도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사업장 안에서의 점거 파업'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법에 따라 현실에서도 사업장 점거 파업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현장에서 점거 파업을 하고 있다. 이런 토양하에서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기는 어렵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법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것도 개혁이다.

―노란봉투법 못지않게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들이 우려하는 법이다. 안전이라는 게 일하는 습관, 문화와 관련된 문제인데 처벌 만능주의로 효과가 있겠냐는 것이다.

▲문화를 바꾸는 것이 제도다. 예전에는 사고가 나면 법인과 현장소장한테만 벌을 줬다. 중대재해법 이후 지금은 경영 책임자가 '내가 감방 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다 보니 신경을 쓰게 됐다. 예산을 확보하고 조직을 만들고 현장을 체크하면서 점차 바뀌고 있다. (다만 이 전 장관은 정부가 사망사고 건수에만 집착해 다른 업무를 간과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당장 죽은 사람은 없지만 나중에 사망사고가 될 수 있는 '아차 사고(Near Miss)'를 관리하는 체계가 우리에게는 없다. 재난의 경고음을 흘려듣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로벤스 보고서'에 따르면 1974년 노동보건안전법이 제정된 뒤 사망자가 연간 1000명에서 200명으로 줄어들기까지 50년이 걸렸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아픈 손가락'이다. 약자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만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사망사고가 많이 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더 이상 예외로 봐주기 힘든 것 아닌지.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자 배치 등 기본적인 의무도 이행하기 힘들 정도다. 현실이 법을 못 따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을 무리하게 적용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셈이 된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형벌 위주의 중대재해법을 과징금 형태로 바꾸고 그 수입을 영세사업자에게 지원해 안전 인프라를 만들게 하자. 이런 게 실사구시 아닌가. 선전선동만 해서 일거에 세상을 바꾼다? 그건 아니다.

―정부는 정년연장을 노동개혁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이 이슈는 청년 일자리와 맞물려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명분은 좋다. 그런데 정년연장을 하면 대기업, 공공기관 직원만 혜택을 볼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과 정년연장을 연계하지 않고 먼저 정년만 연장하면 노조가 부담되는 임금개편에 동의할까?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늘리면 질 좋은 일자리가 줄고 청년은 점점 갈 데가 없어지게 된다.

―노동개혁 전반의 문제에 대해 기업들이 이미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에 잘 반영되지는 않는다.

▲노사 이슈와 관련해 노동단체는 어떤 주장을 한 뒤 그걸로 끝나지 않고 정부와 비공식적인 소통을 계속하면서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한다. 우리 재계단체는 다르다. 성명서를 내면 그걸로 끝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년연장과 관련한 임금체계 개편과 계속고용제도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한 뒤 업계에 확산하도록 유도하면 그게 대세가 될 수 있다. 정부가 그 흐름에 따라 제도를 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동 분야와 관련한 현 정부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에 이어 노동 존중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 존중 시즌2'라고 할 만하다. 친노동을 표방하면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 보호, 권리확대 등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 점이 성과라면 성과다. 반면 노동계에 치우쳐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고, 기업의 일자리 기반이 약화하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이 전 장관은 사전 서면 답변과 대면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해 매우 절제된 표현을 썼다.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진정한 노동 존중은 그게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노사 관계는 너무 대립적이고, 퇴행적이고, 급합니다. 언 발이 춥다고 뜨거운 물을 부어버리면 동상에 걸리잖아요. 서서히 따뜻하게 해줘야지, 뜨거운 물을 확 부어버리면 그건 다 망치는 거지요."


■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약력 △영남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행시 25회 △고용노동부 장관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 △일자리연대 대표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syhong@fnnews.com 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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