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다않고 두손모와 나 또한 가녀린 소망의 기도를 드려본다.
며칠 전 중·고등학교 동창생들의 모임이 제천 모 식당에 예정돼 있어 서울에서 일찍 내려온 친구들과 점심을 하고는 고등학교때 소풍을 갔던 구학에 있는 탁사정을 찾아 빡빡머리에 검정모자를 쓰고 검정 교복을 입었던 학창시절로 돌아가 옛 추억을 더듬어 보게 됐다.
바람은 차갑게 옷깃을 스쳤지만 친구들과 같이 오랜만에 찾은 이 곳, 나 역시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라 더 그렇다.
탁사정은 제천 19경 중 9경으로 용암천의 남쪽 절벽 위에 까마득히 서있다.
절벽은 마치 도끼로 장작을 내려친 것처럼 매끈하게 수직으로 솟아 올라 있어 그 절벽 끝에 정자가 있으나 아래쪽에서는 우거진은 숲에 가려 볼 수 없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숨 가쁘게 올라서면 능선이 나오고 능선의 오른쪽에 탁사정이 보인다.
탁사정은 본래 옥호정(玉壺亭)이 있던 자리다.
1568년(선조1) 제주수사이던 임응룡(1523~1586)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8그루를 가져와 심었고 그의 아들 희운이 정자를 지어 팔송정이라고 이름했다.
이 팔송정은 옥파 원규상이 탁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곳 탁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참 절경이다.
60년대 후반에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여름방학이 되면 종종 찾아와 흘러가는 물에 몸을 식히기도 하고 정자에 올라가 자연 경관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청년 때에는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아와 지난 학창시절 추억담을 들려주는 데이트 장소로도 제 몫을 톡톡하게 감당해 주었던 곳이다.
어디 그뿐이랴, 내가 90년대 장학사로 근무할 때는 여름방학이면 학생들의 안전한 물놀이를 위해 일선 학교와 합동 야외 생활지도 장소이기도 했다.
언제나 찾아와도 사시사철 어머니 품속처럼 따스하게 맞아주는 이 곳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쉼터요, 말없는 우리네 벗이요, 스승이기도 했다.
반백년이 지나 오랫만에 친구들과 이곳을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지난날의 학창시절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친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60년대 모두가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왔다고 말이다.
어쩌다 이곳에 오기로 하면 저 나름대로 별다른 반찬도 없는 도시락을 준비해 서로 펼쳐놓고는 웃고 이야기하며 우정을 쌓았고 각자의 미래를 당당하게 그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노라고 서로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어느새 저녁모임을 위해 아름다웠던 추억을 가슴에 고이 담고 이곳을 떠나려고 하니 차창에 비치는 겨울 햇살이 더 정겹기만 하다.
아쉬움에 나는 겨울 탁사정이라는 시 한수를 지어 읊조려 본다.
'적막함 스며드는 / 한겨울 탁사정에// 나그네 옛정그려/ 백사장 마주보니// 잔설에 숨죽여있던 / 노송숲이 춤추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친구들이 와 있었다.
오늘은 매년 해기 바뀔 때마다 보고픈 얼굴들을 만나 학창시절로 돌아가 아무 부담없이 수다를 떨수 있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울산에서 충주와 태백에서 모두들 모였다.
다들 머리는 허옇고 얼굴은 주름살이 깊게 패여 지나온 삶의 여정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금후 신년인사회를 주선한 회장인사가 있은후 자유롭게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니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새록 새록 피어난다.
무엇보다 지난 삶의 질곡에서도 여기까지 달려온 친구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그래, 어쩌면 이제 우리나이는 추억을 먹고사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바라기는 학창시절 청운의 꿈을 같이 했던 친구들 올 한해도 모두가 정말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성범 수필가 탁사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