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해 1심에서 징역 23년이 선고됐다. 특검의 구형(징역 15년)보다 8년이나 높은 형량으로, 만 79세인 한 전 총리 연령을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형이다.
법원은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라고 못박으면서, 특히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점에서 기존 내란 사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는 친위쿠데타라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21일 내란우두머리 방조, 내란중요임무종사,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공용서류손상,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위증 혐의를 받는 한 전 총리에게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과 그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그럼에도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무총리로서 12·3 내란의 진실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비상계엄 관련 문구를 은닉하고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 폐기했고 헌법재판소에서 위증했다"고 지적했다.
"12·3 내란이라고 말하겠다" 비상계엄 성격 첫 규정
이진관 부장판사. 사진공동취재단 |
재판부는 "세부적인 내용이 복잡해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겠다"며 이날 선고를 두괄식으로 진행했다. 통상 1시간 가까이 선고이유 낭독이 이뤄진 후에야 유무죄 여부가 확실히 갈리지만, 이날 선고에선 초반부터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에 대해 유죄로 인정한다"고 결론을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근거해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과 경찰 공무원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관위원회를 점거, 출입 통제하는 등의 행위는 형법 87조에서 정한 내란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하에서는 12·3 내란이라고 말하겠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이 내란임을 내내 명확히 강조했다. 재판부는 당시 포고령에 대해 "의회 민주주의 제도와 영장주의를 소멸시키고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검열을 시행해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려는 목적, 즉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발령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수의 군 병력과 경찰 공무원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는 등 다수인을 결합해 위력을 행사하고 해약을 고지함으로써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인정했다.
한덕수, '계엄 국무회의' 조작…총리 헌법적 책임 '부작위'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행위에 사전에 모의하거나 실행행위를 지휘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볼 자료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요건을 외형적으로나마 갖추도록 함으로써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말리기 위해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만류하고자 했다면 세종시 등지에 있는 국무위원들까지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국무회의장에서 영상회의 방식으로 개의할 것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한 전 총리가 직접 연락한 송미령 전 장관에게 대통령실 소집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점이나 추가로 대통령실에 도착한 국무위원들에게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의견을 말해보라거나 자신은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지 않은 점도 내란 가담 정황으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가 채워져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러 나갈 때에도 윤석열을 만류하지 않았고 오히려 윤석열에게 국무회의 심의를 마쳤다는 취지로 고개를 끄덕였다"며 "김용현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이 들어있는 서류봉투를 찾으러 대통령실로 돌아왔을 때에도 만류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서류 봉투를 건네주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국무회의 부의장인 한 전 총리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막을 책임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 "부작위"도 내란중요임무종사 범죄의 실행 행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무회의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비상계엄 선포를 저지했어야 할 작위의무를 부담한다"며 소집한 국무위원들에게 사유와 의안을 미리 알려줘 그들이 의사정족수에 포함되지 않는 차관을 대리 출석 시키는 방법 등으로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국무총리로서 자신의 지휘·감독을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를 지시 받은 것을 알게 됐을 때 이를 중지하거나 취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어야 할 작위의무도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오히려 이상민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에 관해 긴밀히 협의해 이상민으로 하여금 그러한 지시를 수용하고 이행하도록 했다"며 "국무총리로서 작위의무를 이행했다면 비상계엄 선포 등 내란 행위라는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후 망연자실한 상태로 대통령실을 떠나려던 국무위원들을 불러 세워 서명을 받으려 한 행위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봤다. 당시 한 전 총리는 부서를 거부한 국무위원들에게 '국무회의 심의 하자로 비상계엄 해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까지 주장하며 부서를 받으려고 설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24년 9월 비상계엄 의혹이 제기되던 시기 한 전 총리가 직접 국회에서 계엄 해제의 조건에 대해 답했고, 비상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등을 보고 위헌·위법성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 전 총리의 행위들에 국헌문란 목적과 내란중요임무종사 고의도 인정된다고 봤다.
"한덕수 진실 은폐로 사회·정치적 분절과 갈등 심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왼쪽)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해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계엄 사후 범행 대부분도 유죄로 인정했다. 대통령이 국법상 행위인 비상계엄 선포가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선포 전 부수한 문서에 의해 이뤄진 것처럼 보이게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허위로 만든 혐의와 이를 폐기해 대통령기록물을 손상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형사법정 등에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김 전 장관이 이 전 장관에게 문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등의 거짓 진술을 한 것도 모두 위증죄 판단을 받게 됐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최근 건강 상태와 배우자 돌봄이 필요한 사정 등을 고려하더라도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친위쿠데타"에 대한 엄중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12·3 내란은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며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내란 행위를 해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 자체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래로부터의 내란에 해당에 해당하는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위로부터의 내란에 가담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12·12 사건 등과 비교해도 12·3 비상계엄이 더욱 치명적이라는 평가다.
또 과거 내란이 발생했던 시기와 12·3 내란이 발생한 시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비교했을 때도 이번 내란 행위로 인한 경제적·정치적 충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 행위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분절과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상처와 갈등이 쉽사리 봉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한 전 총리가 최후진술에서 뒤늦게 한 사과의 진정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한편 재판부는 애초 특검이 기소한 내란우두머리 방조 혐의에 대해서는 내란죄는 필요적 공범으로 관여자의 의사방향이 일치하는 집합범이라는 점에서 형법 총칙에 규정된 방조범 관련 규정은 적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 통고여부 등을 확인하거나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했다는 부분 등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범행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사후 계엄선포문도 작성은 인정하지만 행사됐다고 보긴 어려워 행사죄는 무죄로 판단했다.
한 전 총리는 대체로 표정 변화 없이 선고를 들었다. 중형이 선고된 후 재판부가 구속 여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재판장님의 결정에 겸허하게 따르겠다"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재판부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고 한 전 총리를 법정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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