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의 한 장면. 이란 테헤란에 있는 카리자크 감식 센터 앞에 놓인 주검 가방에서 주민들이 가족과 지인을 찾고 있다. AFP 연합뉴스 |
김승호 | 한림대 경력 교수·전 이란 대사
이란의 반체제 시위가 수많은 희생을 남긴 채 또다시 진압되는 모양새다. 2009년 부정 선거 시위 이래 다섯번째다. 이번 시위는 규모가 더욱 전국적이었고 탄압 또한 무자비했다는 점이 특징이지만, 폭압과 좌절이 반복되는 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봉기와 진압의 악순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체제뿐만 아니라, 그 체제를 지탱하고 구성하는 ‘이란인’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필수적이다.
필자가 경험한 이란인들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지적이고 성실한 생활인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동포에게 서슴없이 총을 쏠 수 있으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켰던 저력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가? 그 답은 이란 사회에 공존하는, ‘피해자’와 ‘영웅’이라는 상충하는 정체성에서 찾을 수 있다.
몽골과 아랍의 지배,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과 미국의 개입,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역사적 경험은 이란인들에게 깊은 피해 의식을 남겼다. 특히 시아파 이슬람은 억울하게 순교한 후세인 이븐 알리를 숭상하며 이러한 정서를 종교적으로 승화시켰다. 국가와 조직 차원에서 이 피해 의식은 영웅적 소명으로 전환된다. 억압에 저항하고 정의를 수호하며 ‘피억압자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이 피해자-영웅의 결합은 상시적인 공포와 경계를 낳고 군사적 통제를 정당화한다. 지배 엘리트들에게 민중의 생존 절규는 고통의 호소가 아니라 신의 사명을 방해하는 배신의 외침으로 들린다. 이들에게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은 소명의 실천이기에 주저 없이 총을 겨누는 것이다.
반면 개인 차원의 이란인은 피해자 정체성을 더 강하게 내면화한다. 지금 당장 영웅이 되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언젠가 실현될 정의의 토대가 된다는 믿음이다. 시아파의 구원론적 세계관에서 고통은 극복이 아닌 인내의 대상이며, 이는 권력에 대한 순응과 고통의 운명화를 강화해 왔다. 실제로 이란 역사에서 민중 봉기로 체제가 전복된 사례는 1979년 혁명이 유일하다.
그런 이란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오는 것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이란인들은 이란 사회의 후진성과 모순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조직의 부재다. 정당, 노조, 시민단체가 차단된 사회에서 각성된 개인은 고립될 뿐이다. 이란인의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며 현실 감각 또한 뛰어나다. 이들은 합리적 계산 속에서 행동한다.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걸고 대안 없는 체제 전복에 나서는 것은 무모한 선택이다. 1979년 혁명이 가져온 현재 체제는 성급한 해체가 더 나쁜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는 학습된 이성을 남겼다.
이란의 미래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주목할 지점은 네가지다. 첫째, 시위가 조직화로 발전할 수 있는가이다. 무자비한 탄압이 오히려 저항의 결집을 촉발할 수 있다. 둘째, 체제 내부의 균열 가능성이다. 경제 악화와 과도한 폭력에 대한 회의가 엘리트 내부의 각성을 유발할 수 있다. 셋째, 이란의 국제적 위상 약화다. 물질적, 군사적 기반이 흔들리면 ‘피억압자의 수호자’라는 체제 명분도 손상된다. 끝으로 체제의 자기 조정 기능이다. 그간 이란은 개혁파와 보수파의 교차 집권으로 불만을 조절해 왔으나, 이번 진압 이후에도 이 기능이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이란 사회는 이미 근대적 개인들로 채워져 있지만, 집단적 미래를 설계할 제도적 공간은 부재하다. 그 결과 봉기는 반복되나 체제는 유지되고 사회는 파편화된다. 단기적으로 통치는 더욱 폭력적으로 강화되겠지만, 이는 안정이 아닌 위기의 누적일 뿐이다. 체제가 조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순간, 붕괴는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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