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자신이 의장을 맡은 가자지구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평화위 참여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트럼프판 유엔’ 구상은 시작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임 1주년을 맞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화위가 유엔을 대체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유엔은 정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유엔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한 적이 없다”며 “유엔은 내가 수많은 전쟁을 해결했음에도 나를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유엔이 계속 운영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당초 평화위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만든 ‘가자 평화계획’에서 전후 가자지구 재건과 통치를 감독할 기구로 제시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60여개국에 보낸 초청장에서 평화위는 국제 분쟁 해결 기구로 묘사돼 있다. 이에 평화위가 기존 유엔을 약화하는 ‘트럼프판 유엔’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가장 먼저 불참 의사를 밝혔다. 엘리제궁은 평화위가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고 유엔 체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산 와인과 샴페인에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참여를 압박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또한 참여를 거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공식 입장은 ‘검토 중’이라는 것이지만 납세자들의 돈을 10억달러(약 1조4700억원)나 내면서 푸틴과 함께 위원회에 앉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은 정치 천재가 아니어도 알 수 있다”며 “사람들이 가입할 것 같지 않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앞서 미국은 10억달러를 내면 평화위 종신 회원 지위를 주겠다고 밝혔다.
노벨평화상을 두고 트럼프와 갈등을 빚고 있는 노르웨이의 안드레아스 모츠펠트 크라비크 외무부 차관도 평화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헬렌 맥엔티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평화위원회 참여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유엔과 국제법의 우선성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역시 평화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탈리아 매체가 전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 주요 국가 정상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라루스 외무부 대변인 루슬란 바라노프가 19일(현지시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게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참여를 초청하는 서한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평화위원회 초청장을 받은 60여개국 가운데 현재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국가는 10여개국 수준이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카자흐스탄, 모로코, 헝가리, 카자흐스탄, 아르헨티나, 베트남,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이스라엘 등이다. 헝가리와 아르헨티나는 친트럼프 성향의 극우 정권이 집권하고 있으며, 알렉산드르 루크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독재와 인권 탄압,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지원 등을 이유로 수년간 국제무대에서 외면받은 인물이다.
평화위원회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로버트 우드 전 유엔 주재 미 차석대사는 “푸틴은 러시아의 평화위원회 회원국 자격을 이용해 유엔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동맹 관계에 분열을 조장할 것”이라며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대부분의 유엔 회원국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가디언의 줄리안 보거 국제 선임 특파원은 유엔이 트럼프의 전형적인 ‘미끼 상품 판매 수법’에 걸려 들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해 11월 승인한 평화위원회는 가자지구 평화에 관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트럼프가 지배하는 ‘돈을 내면 참여할 수 있는 클럽’, 유엔 자체를 대체하려는 트럼프의 마러라고 궁정의 국제판”을 지지하도록 속아 넘어갔다고 꼬집었다.
평화위원회의 참여율 저조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베네수엘라 군사작전과 그린란드 병합 야욕 등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펼쳐 우크라이나 휴전 논의부터 가자지구 휴전 협상 진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요 외교적 목표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트럼프가 종신 의장, 1조5000억원 내면 영구 회원···유엔 근간 흔드는 ‘트럼프판 유엔’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19163001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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