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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시론]핵융합의 산업적 가치〈4〉한국의 핵융합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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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환 인애이블퓨전 대표

최두환 인애이블퓨전 대표

핵융합은 과학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상용화로 갈수록 승부처는 제조와 엔지니어링이다. '될까'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누가 먼저 만드느냐'의 경쟁이다. 그 경쟁에서 한국은 유리한 위치에 있다.

◇물리학에서 엔지니어링으로

2022년 미국에서 핵융합 에너지 순증을 달성했다. 과학적 가능성은 증명됐다. 이제 질문은 “누가 상용화하느냐”다.

핵융합 기술은 두 영역으로 나뉜다. 물리학과 엔지니어링이다. 물리학은 플라즈마를 어떻게 가두고 제어할 것인지의 문제다. 엔지니어링은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장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의 문제다. 70년간 핵융합은 물리학의 영역이었다. 이제 상용화 단계에서는 엔지니어링이 승부처다.

핵융합로는 1억도의 초고온과 영하 269도의 초전도가 수 미터(m) 거리에 공존해야 한다. 진공 용기, 초전도 자석, 열차폐 시스템 모두 극한의 정밀도를 요구한다. 상용화의 성패는 '만드는 힘'에서 갈린다.

◇한국의 월등한 엔지니어링 DNA: 조선, 원전, 반도체, 방산


한국에는 핵융합이 요구하는 정밀도와 품질을 이미 증명한 산업이 있다. 조선에서는 LNG 운반선을 밀리미터 단위로 용접한다. 원전에서는 UAE 바라카 4기를 계획대로 완공했다. 반도체에서는 나노미터 단위의 초정밀 공정을 운영한다. 방산에서는 극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장비를 만든다. 이 네 산업이 요구하는 것은 핵융합과 같다.

실적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진공 용기를, 현대건설은 열차폐 시스템을, 효성은 초전도 전원 공급 장치를 납품했다. 세아특수강은 핵융합로용 저방사화 특수강을 공급했다. 한국은 ITER에 2억유로 이상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며 품질과 납기를 검증받았다.

조선, 철강 분야에서 한국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후발주자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핵융합은 다르다. 이미 세계 톱 엔지니어링 역량을 갖춘 분야다. 게다가 세계 전력발전 시장은 연간 2조달러가 넘는다. 조선이나 철강을 뛰어넘는 산업이 열린다. 선발주자로서 이 거대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다.


◇물리학 세계 정상급, 엔지니어링 세계 최고

한국형 핵융합 연구로 KSTAR는 2024년 1억도 플라즈마 100초 유지 세계 기록을 세웠다. 물리학 영역에서 한국은 세계 정상급이다. 더 나아가 엔지니어링 영역에서는 세계 최고다. 네 산업에서 쌓아온 정밀 제조 역량은 미국, 유럽, 일본 어디와 비교해도 최상위권이다.

미국은 혁신에서 앞서지만 제조업 기반이 약화됐다. 설계는 미국에서 하더라도 제조는 해외 조달이 필요하다. 유럽은 경험이 풍부하지만 의사결정이 느리고 비용이 높다. ITER의 지연이 이를 보여준다. 일본은 소재와 부품에서 강하지만 대형 시스템 통합에서는 한국이 앞선다. 조선과 원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건 우연이 아니다.


무엇보다 ITER와 KSTAR를 통해 축적된 핵융합 전문 인력이 있다. 30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인적 자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탁월한 납품 성과, 경쟁력 있는 가격, 종합적인 서비스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

한국 핵융합 경쟁력

한국 핵융합 경쟁력


◇한미일 협력과 중국 변수

핵융합은 혼자서는 어렵다. ITER의 교훈은 명확하다. 34개국이 그냥 협력하면 수십년이 걸린다. 미국의 기술 혁신, 한국의 정밀 제조와 시스템 통합, 일본의 첨단 소재가 합쳐지면 시너지가 가능하다. 미국 전략연구소 SCSP도 한미일 핵융합연합을 권고했다. 단독 개발로 20년 걸릴 것을 전략적 협력은 10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

반대편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의 핵융합 투자는 서방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역설적으로 한국에 기회다. 서방 국가들은 국가 안보를 우려해 중국과의 협력을 꺼린다. 한국은 서방이 신뢰할 수 있는 제조 파트너로서 유일무이한 위치에 있다. 중국을 대체할 수 있으면서도 동맹국인 나라, 그것이 한국이다.

◇에너지 안보와 AI 경쟁

앞선 칼럼에서 논의한 것처럼 인공지능(AI) 경쟁은 에너지 경쟁이다. 에너지 인프라를 장악하는 쪽이 AI의 미래를 지배한다. 핵융합 경쟁은 기술 경쟁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경제력을 건 전략적 경쟁이다.

한국에 이 경쟁은 더욱 절실하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한다. 공급망이 막히면 경제가 직격탄을 맞는다. 핵융합은 탄소 배출도 없고, 원전처럼 연쇄반응 위험도 없다. 바닷물에서 연료를 추출할 수 있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 한국에게 핵융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 필요한 것

한국 정부는 차세대 KSTAR와 한국형 공공민간협력(K-PPP)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연구 역량과 민간의 제조 역량이 결합할 때 진짜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전 세계 70개 이상의 핵융합 스타트업 대부분은 자본은 있어도 제조 역량이 부족하다. 한국의 제조 역량과 글로벌 핵융합 개발사를 연결하는 공급망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한국은 '핵융합의 TSMC'가 될 수 있다.

핵융합의 미래는 과학만으로 오지 않는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핵융합은 이제 물리학 경쟁에 더하여 엔지니어링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의 시간이다.

마지막 회에서는 핵융합 산업이 한국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

최두환 인애이블퓨전 대표 dwight@enablefu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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