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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사라진 자리, 그럼에도 우리가 따듯한 한 문장을 남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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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후/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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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세상이 갈수록 험해진다는 말은 이제 인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진짜 추위는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닫힌 문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선의'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이상한 병증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호의에는 의심의 색안경을 끼고, 타인의 불행은 무감각한 시선으로 지나치며, 정작 전해야 할 고마움 앞에서는 입술을 굳게 닫습니다. "세상이 험해서 어쩔 수 없다"는 그 흔한 변명은 사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마저 포기하고 있다는 슬픈 자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세상의 무게는 혼자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며, 아주 작은 감사의 말 한마디가 거대한 시련을 이겨낼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뒤틀린 마음,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 지독히도 인색한 정서, 그리고 마음을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무거운 삶의 관성들이 겹겹이 쌓여 세상을 더욱 잿빛으로 물들입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문득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푸념이 입가에 맴돌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서 희망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차마 놓지 못하는 제 자신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집니다. '왜 나만 여전히 온기를 꿈꿔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피로감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슬픈 깨달음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반도체 덩어리보다 못해진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 때입니다. 로직과 알고리즘으로 짜인 AI는 적어도 편견 없이 우리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만, 같은 심장을 지닌 인간은 오히려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기도 합니다. 인간이 기술보다 퇴보하고 있다는 그 서늘한 예감이 요즘 저의 발목을 잡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진짜 친구'가 더 간절해집니다. 내 마음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사람, 행간에 숨은 눈물을 짚어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고맙다"거나 "힘들었지"라는 짧은 한마디를 진심에 실어 보낼 줄 아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힘든 일을 이겨내는 힘은 거창한 논리에 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 마음이 음성이 되어 귓가에 머물거나 문장이 되어 눈에 보일 때, 비로소 우리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얻습니다.

무관심과 시기심이 가득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저는 오늘 다시 문장을 남겨보려 합니다. 누군가에게 닿아 다시 희망을 꿈꾸게 할, 차갑지 않은 사람의 문장을 말입니다.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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