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연방건물 앞 시위대 |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미 미네소타주]=연합뉴스) 권영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인 20일(현지시간) 기자는 트럼프 2기 출범후 더욱 심화한 미국 좌·우 갈등의 상징적 공간을 찾았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으로 30대 여성 르네 니콜 굿이 숨진 이후 미 전역의 관심이 집중된 미네소타주 '쌍둥이 도시'(Twin Cities·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는 다소 평온해 보이는 겉보기에 달리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네소타는 현재 야당인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주이지만 굿의 총격 사망 사건 이후 ICE로 대표되는 트럼프 정권 및 보수·우파 진영과, 그에 저항하는 진보·좌파 진영의 첨예한 대치를 상징하는 지역이 됐다.
시민들은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식당과 상점을 여는 등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는 듯했지만, 차량이나 건물 유리창에는 ICE 요원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그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메시지가 마치 익숙한 풍경처럼 붙어있었다.
지난 7일 굿이 사망한 미니애폴리스의 사건 현장은 한 블록 전체가 추모 공간처럼 마련돼 있었다. 주택들과 도로 사이 한 뼘 이상 눈이 쌓인 둔덕에 차려진 굿의 추모 공간에는 수없이 놓인 꽃다발이 영하 날씨에 얼어붙은 채 노랗고 붉은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꽃다발 주위로는 '선하게 살자' 또는 '굿이 되자'는 연대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구호 'Be Good'이 적힌 피켓을 비롯해 '르네 니콜 굿을 위한 정의', '기억하라', 'ICE는 떠나라' 등의 팻말이 눈에 띄었다.
굿이 사망 당일 마지막으로 ICE 요원에게 했던 말인 "너한테 화난 게 아니야"를 인용하거나, 6년 전 같은 도시에서 "숨 쉴 수가 없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연상시키는 구호 '숨 쉬어라'(Breath)가 적힌 피켓도 있었다.
평일인데도 이곳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혼자, 또는 동료들과 함께 방문한 추모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조용히 추모 공간을 지켜보거나 스마트폰을 꺼내 꽃다발과 피켓을 카메라에 담았다.
르네 굿 추모공간에 놓은 꽃과 피켓 |
친구 둘과 함께 오전 일찍 이곳을 찾은 한 여성 추모객은 "르네 굿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뉴욕에서 왔다"며 "이건 살인사건인 동시에 비극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으로 미국민 모두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남고 싶다고 밝힌 그는 굿의 죽음 이후 사람들이 겁을 먹기보다는 굿이 했던 일을 이어 나가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염두에 둔 듯 "한국에서의 (시민단체) 조직 활동에 감명받았다"며 "또 한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르네 굿 추모공간에 놓은 꽃과 피켓 |
굿이 사망한 거리 바로 앞에 거주하며 매일 추모객을 위해 모닥불을 피워놓는다는 존 마틴은 도시를 더욱 안전하게 하기 위해 이민 단속을 벌이고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하는 일 중에 안전한 건 하나도 없다"며 "그들의 전술은 빌어먹을 정도로 잔인하다"고 지적했다.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손이라는 그는 "원주민들은 누구보다 먼저, 백인들이 오기 전부터 여기에 있었다"며 "그들은 도대체 누구이길래 누구는 여기 남고 누구는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말로 연방 정부의 이민 단속을 비판했다.
소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미 연방정부 건물 '헨리 위플 주교 연방청사' 앞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굿의 추모 공간과 달리 10여 명이 모여 끊임없이 구호를 외쳐대고 적극적으로 피케팅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현장에는 주 정부 소속의 경찰들이 배치됐지만 이들을 막아서거나 제지하지 않았고, 연방 요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이 건물과 시위대 사이 좁은 왕복 2차로 거리 약 130m는 사람들이 걸어서 길을 건너지 못하도록 인도와 차도를 철망과 방책으로 막아놓았고, 그 아래에는 이전에 시위대가 래커로 쓴 것으로 보이는 '굿의 명복을 빕니다'나 'ICE 꺼져라'(F*** ICE) 등 구호가 보였다. 이전에 좀 더 격렬했던 시위 현장을 짐작케 했다.
시위대는 ICE를 향해 "생계를 위해 이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다른 직업을 찾아라"라고 외쳤다. 연방 요원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건물에 들어갈 때는 여지 없이 양손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야유하거나, 오른손 중지를 들어 보였다.
'ICE 떠나라' |
시위에 참여한 백인 여성 로라는 "어제는 그저 길에서 운전하고 있었는데도 검문을 당했다"며 "(ICE 요원들은) 실제로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도 잡아다 구금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ICE 요원들이 위플 주교의 이름을 딴 건물에 상주하는 데 대해 "위플 주교는 링컨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고 땅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들을 대변했던 인물"이라며 이는 "모욕적"인 일이고 위플 주교가 "무덤 속에서 통곡할 일"이라고 개탄했다.
밥캣이라는 가명으로 자신을 밝힌 남성 참가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1년 동안 미국이 문화적으로 변했다면서 "마치 나치인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공개적이면서 편안하게 증오 발언을 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시카고에서 왔다는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네소타·일리노이·캘리포니아 등에서 단속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지역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선택한 것 같다"면서 "메시지 전달이 목적이고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팀 월즈 주지사 관저앞 시위 |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팀 월즈 미네소타주 주지사의 세인트폴 관저에서도 이날 오후 시위가 진행됐다.
'여성 행진'(Women's March) 주최로 전국적으로 진행된 '자유 아메리카 파업'(Free America Walkout)의 일환으로 이날 오후 2시로 공고됐던 이날 시위 현장에는 시작 30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으나, 이후 가족·친구들과 삼삼오오 몰려들어 순식간에 50명이 모였고 2시 30분이 되자 100명을 넘겼다.
'여성 행진'이라는 단체가 주최한 시위였던 만큼 참가자들의 상당수는 여성이었고, 또 대부분 백인이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한 여성 시위 참가자는 "르네 굿은 우리와 같은 엄마였기 때문에 연대하는 의미로 나왔다"며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ICE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저마다 집에서 두꺼운 종이에 매직과 색연필로 글을 쓰고 색칠한 피켓을 가져왔고, 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 조로 묘사한 그림을 들기도 했다. 월즈 주지사의 관저 앞인 만큼 주지사를 지지한다는 문구도 심심찮게 보였다.
시위대 격려하는 월즈 주지사 |
월즈 주지사는 시위가 진행되는 도중 관저에서 나와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일어서 주셔서 감사하다"며 '비폭력 저항'과 '착한 말썽'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의 딸이라고 밝힌 시위 참가자 하이디는 기자에게 "민주당은 너무 약해빠져서 트럼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며 "누가 선거에 출마하고 누가 안 하는지 나치들이 통제하게 내버려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저 앞 시위대를 지나치는 자동차들은 승용차, 픽업트럭, 택배 차량, 청소 차량 등을 막론하고 거의 예외 없이 이들에게 지지의 의미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고 일부는 손을 흔들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등 경의를 표했다.
comma@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