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일미푸드 대표,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 |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흑백요리사 시즌2’는 공개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던 만큼, 마지막까지 진한 여운을 남기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흑백요리사2’의 분위기는 시즌1과 다소 다르다. 시즌1이 흑과 백의 ‘계급 전쟁(클래스 워)’이었다면, 시즌2는 로컬 재료와 조리법을 두고 펼치는 치열한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즌2에는 판체타(이탈리아식 돼지고기 염장/숙성법), 제누아즈(Génoise - 프랑스식 스펀지 케이크 제조법), 콩피(Confit - 저온 기름에 장시간 익히는 프랑스 조리법), 삼배초(초무침 조미법), 블라스트 칠링(Blast Chilling-고온 조리 직후 급속 냉각시키는 법)과 같은 조리법들이 선보였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브라운 비일 스톡(Brown Veal Stock-송아지 뼈를 구워 우려낸 육수), 시오코지(Shio Koji - 쌀누룩에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일본 조미료)와 같은 재료들이 첨가되면서 그 맛이 어떨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또한 갯장어(하모), 까치버섯, 적근, 러셋 감자, 소홍주, 황륙군, 함양파와 같이 알 만한 재료지만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독특한 품종의 식자재들이 등장하면서 시즌 1은 ‘누가 더 유명한가’를 묻는 계급 투쟁이었다면, 시즌 2는 ‘누가 더 깊이 있게 재료를 다루는가’를 겨루는 해석의 전쟁으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가평 잣, 진동 미더덕, 원주 우설, 포항 아귀, 파주 청국장 같은 로컬 식재료는 셰프들의 장인 정신(craftsmanship)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었고, 후덕죽 같은 명장의 묵직한 존재감은 서바이벌을 한 편의 고품격 다큐멘터리로 끌어올렸다. 화려한 미식 용어와 테크닉이 쏟아질수록 시청자들은 화면 속 재료와 조리 과정을 따라가며 ‘눈으로 맛을’ 상상하게 되고, 결국 그 맛을 언어로 완성해 주는 심사위원의 평가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흑백요리사2’에서 맛을 표현하는 단어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아마도 ‘감칠맛’일 듯하다. 영어 번역은 savory(맛깔스러운)를 주로 사용했지만 사실상 savory는 상당히 포괄적인 단어이기에 감칠맛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입에 감기며 자꾸 생각나게 하는 감칠맛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영어 사전에 등재된 일본어인 umami(우마미)이다.
이는 일본인 이케다 기쿠나에(도쿄제국대학 화학과 교수)가 1908년에 아내가 끓여준 다시마 국물을 먹다가 “짠맛·신맛·단맛·쓴맛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데, 이 맛의 정체는 뭐지?”라는 의문을 품고 실험을 이어갔다. 결국 다시마 감칠맛의 핵심은 글루탐산(Glutamate)임을 밝혀냈고, うまい(旨い/美味い, 맛있다) + 味(み, 맛) = うま味(うまみ, 우마미)라는 합성어가 탄생했다. 이후 글루탐산에 나트륨을 결합하면 보관과 사용이 쉬운 가루 형태인 MSG(글루탐산나트륨)가 된다는 점을 알아냈고, 1909년 ‘맛의 본질(Essence of Taste)’이라는 뜻의 ‘아지노모토(Ajinomoto)’가 출시되며 전 세계 조미료 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만약 한국 기업인 대상의 ‘미원(1956년 출시)’이 먼저 출시되었다면 지금쯤 우마미 대신 감칠맛(Gam-chil-mat)이 영어 사전에 등재됐을지도 모른다.
우리말 감칠맛의 어원은 옷감의 끝이 풀리지 않게 실로 둥글게 휘감아 꿰매는 바느질 기법인 ‘감침질’에서 시작됐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의 작용이 이 바느질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맛이 단순히 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이 천을 감듯 혀와 입안 전체를 부드럽게 휘감고(Wrapping), 놔주지 않겠다는 듯 입맛을 잡아당기며(Pulling), 목 뒤로 넘긴 후에도 오랫동안 맴도는(Lingering) 현상을 포착해낸 표현이다. 그래서 감칠맛은 명사라기보다 동사에 가깝다. 어떤 성분이 들어왔을 때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감각적인 상태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마미가 글루탐산이라는 맛의 정체를 밝혀낸 차가운 과학의 언어라면, 감칠맛은 그 맛이 우리 혀에 닿았을 때 벌어지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을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기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우마미(Umami)와 비교하면 다소 차이가 있다.
흑백요리사2를 보고 있으면 귀에 감기는 한국식 표현이 적지 않다. ‘와구와구해서 먹다(chow down)’, ‘맛이 겉돈다(flavors do not blend)’, ‘풋내(raw taste)’, ‘걸쭉한(thick)’, ‘겉바속촉(crispy-juicy)’, ‘꼬들꼬들한(chewy)’ 등 영어 단어와 맛깔스러운 한국어의 느낌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영어 번역은 맛의 논리적인 ‘상태(State)’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어는 고유한 소리와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Texture)’의 뉘앙스까지 담아낸다는 차이점이 있다. ‘와구와구’나 ‘꼬들꼬들’ 같은 생동감이 단순한 영어 자막 속에 갇히는 것이 다소 아쉽다.
‘흑백요리사2′가 보여주는 건, 한 숟가락 안에서 우마미라는 과학과 감칠맛이라는 감각을 동시에 증명해내는 대결이다. 시청자들은 셰프들의 대결만 봐도 혀가 먼저 반응한다. 들어가는 재료, 뿌려지는 양념, 천천히 우러나는 국물만으로도 그 감칠맛을 상상하게 된다.
최종 결승전은 ‘이기는 법’보다 견디는 법을, ‘화려한 한 접시’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가치를 보여줬다.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달려온 요리가 끝내 자기 자신을 돌보는 요리로 돌아왔다. ‘가장 당신다운, 당신을 위한 요리를 하라’는 미션은, 결승을 경쟁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고백으로 바꾸었고, 그렇게 긴 여정은 마무리되었다.
심사위원과 셰프가 나란히 앉아 자신을 위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평가는 대화와 공감이었다. 들깨 두부와 순대는 소박해 보이지만, 사실 노동과 시간이 겹겹이 쌓여야 완성되는 음식들이었음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했다. 요리는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술이기 전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해내는 마음”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잘했다’는 자랑보다 ‘함께였다’는 인사, ‘승리’의 언어보다 ‘존중’의 태도가 먼저 전해지기에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외국 시청자들은 소박한 승자의 소감에 감동한다. 흑백 요리사가 보여준 K-푸드는 한 접시의 맛을 넘어, 정성과 시간, 그리고 사람을 향한 마음까지 담아내서 그런지 화면을 끄고 나서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조수진 (주)일미푸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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