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간이 만든 제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위안의 장치이자, 동시에 가장 위험해질 수 있는 장치다. 인간의 불안과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말을 건네는 순간 종교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종교는 언제나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영역이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주요 종교 지도자 간담회에서 “사이비 종교는 척결해야 한다”고 언급한 발언은 그런 점에서 가볍지 않다. 이는 특정 종교를 겨냥한 정치적 발언이라기보다, 종교 일반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윤리적 질문에 가깝다. 무엇이 종교이고, 무엇이 종교의 이름을 빌린 폭력인가라는 물음이다.
사이비 종교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사회는 1995년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종교적 구원과 종말론적 공포가 결합할 때 개인의 신념이 집단적 범죄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미국과 유럽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종교적 언어를 동원해 공동체를 폐쇄하고, 구성원을 외부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며, 경제적·정신적 착취를 일삼은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주요 종교 지도자 간담회에서 “사이비 종교는 척결해야 한다”고 언급한 발언은 그런 점에서 가볍지 않다. 이는 특정 종교를 겨냥한 정치적 발언이라기보다, 종교 일반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윤리적 질문에 가깝다. 무엇이 종교이고, 무엇이 종교의 이름을 빌린 폭력인가라는 물음이다.
사이비 종교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사회는 1995년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종교적 구원과 종말론적 공포가 결합할 때 개인의 신념이 집단적 범죄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미국과 유럽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종교적 언어를 동원해 공동체를 폐쇄하고, 구성원을 외부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며, 경제적·정신적 착취를 일삼은 사례는 적지 않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해야 할 기준이 있다. 종교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고 삶의 의미를 묻고 공동체적 연대를 북돋울 때 그 존재 이유를 갖는다. 반대로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고난을 강요하고, 공포를 조장하며, 비판적 사고를 차단하고, 개인의 삶과 재산, 인간관계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지배의 기술에 가깝다. 그런 조직은 종교적 외피를 두르고 있을 뿐, 그 본질은 사이비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도 통일교, 신천지 등 일부 종교 단체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경험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단체를 낙인찍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방식이다. 교리를 절대화하고, 지도자를 비판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며, 신도들의 일상과 선택을 조직이 대신 결정하는 구조가 반복될 때 사회는 경고등을 켜야 한다. 이는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신앙의 자유는 개인에게 귀속돼야 한다는 헌법적 원칙을 다시 확인하자는 요구다.
종교의 자유는 민주사회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책임과 함께 가야 한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온전하다. 종교가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익, 과도한 사회적 영향력을 추구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를 검증의 장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투명성, 법의 준수, 인간 존엄의 존중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최소 조건이다.
진우 스님의 발언이 갖는 무게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불교라는 특정 종단의 수장이기 이전에, 종교가 사회 안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환기시켰다. 종교가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배교가 아니라 자기 정화다. 침묵이 중립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고통받는 이웃 앞에서, 왜곡된 신앙 앞에서 종교가 침묵한다면 그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인류는 종교로 인해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종교로 인해 분쟁과 전쟁, 가난과 배제를 겪기도 했다. 그렇기에 오늘의 종교는 끊임없이 질문받아야 한다. 이 신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더 깊이 얽어매는가. 이 공동체는 사람을 살리는가, 아니면 두려움으로 지배하는가.
사이비 종교를 척결하자는 말은 종교를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를 종교답게 지키자는 요구에 가깝다. 인간을 위한 종교, 인간을 존중하는 신앙,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 가르침. 그 최소한의 기준을 사회가 함께 확인할 때 종교는 다시 위안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을 해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이는 어느 한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공동체 전체의 과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의장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아브라함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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