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에 각인시킨 거장 박찬욱 감독이 화려한 글로벌 흥행 기록 뒤에 가려진 한국 영화 산업의 냉혹한 현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최근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미국 시장에서 한국 영화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음에도, 그는 현재의 산업 구조를 '중대한 위기 상태'라고 진단했다.
박찬욱 감독은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작품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고 해서 산업 전체가 호황인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 영화 산업이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점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가 꼽은 위기의 근본 원인은 팬데믹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 관람 형태와 그로 인한 극장의 몰락이다. 팬데믹 기간 관객들은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극장이 주는 특별함을 잊은 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산업 전반의 '악순환'으로 번지고 있다. 박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관객이 줄어들자 수익성에 민감해진 투자자들은 자금 투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투자가 위축되면서 제작 현장에는 창의적이고 대담한 시도 대신, 소위 '팔릴 만한' 안전한 프로젝트에만 돈이 몰리는 보수적인 기획 관행이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이 지나치게 예측 가능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변하면서, 실망한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외면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졌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과거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을 당시, 자신과 주연 배우 이병헌 모두 연이은 흥행 실패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 속에 작업했던 기억을 회상했다. 하지만 현재의 경직된 산업 구조와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투자 환경은 제2의 박찬욱이나 이병헌이 탄생할 수 있는 창의적인 토양을 메마르게 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또한 예산 문제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미국 로케이션 대신 한국 촬영으로 선회하는 등 거장조차 제작 과정에서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고 있음을 시사했다.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과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겪는 비극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박 감독은 "영화 산업 역시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영화가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후광에 취해 있는 사이, 산업의 뿌리인 극장 생태계는 붕괴하고 있다는 그의 경고는 화려한 레드카펫 뒤에 가려진 한국 영화계의 절박한 현실을 관통하고 있다.
YTN star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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