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고용평등임금공시제’를 두고 노사와 전문가들 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기관과 상장법인에 한해 의무화하고 있는 성별 임금 격차 현황을 단순히 민간으로 확대할지, 대상 및 조항 등을 둘러싸고 조율해야 할 부분이 한두개가 아닌 상황이다. 기업의 수용성, 기존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와의 관계 설정 등이 향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부처는 이달 안으로 경영계와 만나 고용평등임금공시제 의견 수렴에 나선다. 6일에도 노동계와 만나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이후 노동계 측은 노동계 내의 의견을 조율해 부처에 다시 회신하겠다고 알린 상태다. 성평등부는 올해 안에 법적 근거와 공시 시스템을 마련해 내년에 본격 시행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도 상장기업과 공공기관은 각각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시스템인 다트(DART)와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공시하고 있다. 다만 성별 임금 현황 외에 직종·직급·직무별 임금액 및 비율, 임금 산정방식 등을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경영계 “임금 정보는 인사 기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6년부터 지금까지 성별 임금 격차 1위 나라다. OECD 평균 남녀 임금 격차는 2024년 기준 11.0%인데 한국은 공시 기업 대상 기준 30.7%다. 여성이 남성의 연간 임금의 70%가량밖에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공공기관에서는 격차 감소 추이가 나타나고 있다. 2024년 성평등부가 344개 공공기관의 성별 임금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7267만원, 여성은 5816만원으로 성별 임금 격차는 20.0%였다. 전년(22.7%) 대비 2.7%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2023년부터 공공부문에 적용해 온 ‘성별근로공시제’를 고용평등임금공시제로 확대·적용하려는 정책 방향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성별 임금 현황을 민간 기업도 공개토록 해 ‘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 오명을 벗어보자는 취지다.
경영계는 우려가 크다. 규모, 조항 등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공식 반응은 자제하고 있으나 결국은 기업 ‘망신주기’, ‘반(反)기업 정서’ 조장이라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평균임금, 중위임금, 초임 등 정하기 나름이겠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별이나 직급별 임금이 공개되면 인사상 정보를 상세히 알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남초 기업의 경우 문제는 더 클 수 있다.
정보기술(IT) 등 핵심 업무에 여성을 거의 고용하지 않는 기업일 경우 단순 노무직이 전체 여성 직원의 임금을 대변하게 돼 남녀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성평등부에 따르면 2023년 여성 과학기술인 수는 6만1430명으로 전체 26만5481명 중 23.1%에 그친다. 2024년 기준 인공지능(AI) 분야 여성 인력은 8242명으로 15.1%에 불과하다. 이 관계자는 “기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여성 직원이 적은 데가 있는데 그 배경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임금 정보만 공개돼 ‘여기는 여성 직원에 임금을 박하게 준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새 공시제가 생길 경우 기업의 행정 부담이 늘어난다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대기업의 경우 다트 공시와 다른 조항으로 공시항목이 만들어질 경우를 걱정한다. 기업의 생산성과 무관한 서류작업(페이퍼 워크)에 매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아예 이런 작업을 할 여력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상 기업 규모가 현재 미정이나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기업의 성평등 공시제도 도입방안 연구’는 500인 이상을 제안했다. 시행 초기에는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뒤 향후 50인 이상, 장기적으로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안이 이상적이라는 분석이다.
◆과제로 부상한 ‘AA’와 관계 설정
2006년부터 정부가 시행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를 이번 기회에 함께 손질할지, 아예 없앨지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AA는 공공기관 및 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며, 성별 고용 및 관리자 비율이 평균의 70% 미만일 때 이행을 촉구하고 시정 기회를 준다. 이행촉구를 받고도 개선하지 않을 경우에는 명단 공표 대상이 된다. 기존에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해 온 제도인데, 성평등부 조직 확대 개편으로 지난해 업무가 이관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AA를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공시제를 얹으면 기업의 행정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동시에 ‘명단 공표’라는 제재가 큰 실효성 없이 이어지고 있어 함께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AA가 보완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일단 공시제를 시작하는 게 먼저라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AA는 약 20년간 시행되면서 성과를 거둔 제도로, 단기간 어떤 결정을 하기에 논의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성별 임금 ‘격차’를 공표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자발적인 변화를 촉진하자는 취지에 따라 영국, 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 공시제를 법제화했다”며 “한국도 글로벌 기준에 따라 공시제를 어떻게 잘 시행할지 논의에 우선 집중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국처럼 AA를 먼저 한 뒤에 공시제를 도입한 나라가 없다는 점도 난제다. 한국만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셈이다.
성평등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당분간 AA를 같이 유지하는 게 노동 현실에 좀 더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부처 공식 입장이 정해진 것 아니다”며 “경영계 등 견해를 듣고 달라질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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