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분야 특허심판 결과별 인용률 현황.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
국내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업들이 빅파마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국내 바이오시밀러 산업이 성장하면서 특허 분쟁이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빅파마들이 특허 만료 이후를 대비해 철저히 방어 태세를 갖추는 만큼, 국내사들도 법적 리스크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20일 쿠키뉴스가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지식재산처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10년간 제약바이오 분야 특허심판 결과, 존속기간 연장무효를 제외한 무효심판 심결과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심결의 연 평균 인용률이 각각 56.47%, 81.9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리지널 신약에 도전하는 제네릭·바이오시밀러의 승소율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효심판이란 특허권자의 특허권에 무효사유가 있다는 주장과 증거를 통해 특허권을 무효로 하기 위해 청구하는 심판을 말한다. 인용 시 특허가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경쟁사들도 복제약 개발이 가능하다. 반면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은 제네릭·바이오시밀러사가 오리지널 신약 원개발사를 상대로 ‘우리 약은 특허권자의 특허권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심결을 구하는 심판이다. 소송을 건 제약사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우회로가 생기는 방식이다.
최근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한국의 제네릭·바이오시밀러 개발사의 승전보가 울려 퍼지고 있다. 다이이찌산쿄의 항응고제 ‘릭시아나’의 특허가 오는 11월 만료되는 가운데 보령, 한미약품, 종근당, 삼진제약, 동아에스티, HK이노엔 등 주요 국내사들이 조성물 특허 관련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 심판에서 승리해 조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화이자의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젤잔즈’ 역시 2027년 만료되는 결정형 특허에 대해 제네릭 도전 제약사들이 무효심판을 통해 특허를 삭제하는 데 성공했다. 물질특허가 만료된 지난해 11월22일 이후 대웅제약, 종근당, 제일약품, 삼진제약 등 국내 제약 다수가 제네릭 제품을 확보했다.
우선판매품목허가 신청 승인률 현황. 2022년 승인률이 유독 낮은 이유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본지에 “품목허가가 되지 않거나 요건 등이 만족되지 않아 반려되거나 업체 사정으로 취하한 경우”라며 “상세 사유는 업체 정보에 해당해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
국내 제약사들이 특허 소송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단순 시장 진입을 넘어 ‘우선판매품목허가권(우판권)’이라는 전리품을 거머쥐기 위해서다. 우판권은 가장 먼저 특허심판을 청구한 후 가장 이른 날 품목허가를 신청하고, 등재특허권 무력화에 성공한 제약사에게 주어지는 9개월 간 독점 판매권을 말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백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우선판매품목허가 신청 승인률은 90.24%에 달한다.
우판권을 확보한 제약사는 9개월 간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만큼 실적 성장에 날개를 달 수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2024년 발간한 ‘우선판매품목허가 제도가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판권을 확보한 제네릭·바이오시밀러 제약사의 매출액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발의약품 매출액은 최대 2억2000만원이 증가한 반면, 원 개발사의 의약품은 최대 14억6000억원의 매출액이 감소했다. 김혁준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 상표데이터팀 연구위원은 “우선판매품목허가 제도는 국내 후발의약품 제약사들의 시장 경쟁력 확보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후발의약품 업체들은 소극적권리범위확인심판(인용률 93.6%)과 무효심판(인용률 69.1%)으로 특허 도전이 활발한 것으로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엔 한 의약품에 대해 여러 제약사가 동시에 특허심판을 진행하면서, 독점적 지위 확보가 어려워져 실효성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
‘13조원’ 아일리아 시밀러 시장 열렸지만…빅파마 특허 공세에 발목
한국 바이오시밀러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이를 저지하려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견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제약사들이 물질 특허 만료 이후에도 제형, 용법, 공정 등 다양한 개량 특허를 추가해 독점 기간을 연장하는 이른바 ‘에버그리닝 전략’을 펼치며 후발 주자들의 진입을 막아서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특허 전쟁의 최대 격전지는 연 매출 94억 달러(약 13조원)로 관련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시장이다. 미국 제약기업 리제네론과 독일 바이엘이 공동 개발한 아일리아는 물질 특허가 이미 만료됐다. 미국과 한국에서 2024년, 유럽에서 지난해 5월 각각 만료됐다. 이에 따라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알테오젠, 삼천당제약 등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리제네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독점 기간 연장을 위해 에버그리닝 전략을 펼치며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아일리아의 물질특허는 2024년 만료됐지만, 제형특허는 2027년, 투여요법 특허는 2032년, 정제방법과 배지특허는 2040년 만료될 예정이다. 이를 무기로 바이오시밀러 개발 제약사를 상대로 제형·공정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동시에 리제네론은 기존 2㎎ 제품 용량을 8㎎으로 늘린 고용량 아일리아을 출시하며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리제네론이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입 방어 전략을 펼치면서 국내사들은 바이오시밀러 허가를 받고도 실제 판매 단계에서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2024년 미국·유럽·한국에서 ‘오퓨비즈’에 대한 허가를 확보했으나, 법적 분쟁이 이어지면서 구체적 출시 시점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비젠프리’의 품목허가를 신청한 삼천당제약도 비슷한 상황이다. 삼천당제약은 주사기에 약물이 충전된 상태로 유통하는 방식의 사전충전형 주사제(프리필드시린지) 제형 기술을 통해 특허를 회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리제네론은 조성·안전성 관련 특허를 근거로 대응에 나섰다. 이에 삼천당제약은 미국 파트너사 프레제니우스 카비를 통해 미국 특허상표청 산하 특허심판원에 해당 특허에 대한 무효 심리를 요청한 상태다.
알테오젠은 제형 특허 회피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알테오젠은 지난해 9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아이럭스비’의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달 초에는 고용량(8㎎)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대응할 수 있는 제형 기술의 국제특허(PCT)도 출원하며, 향후 고용량 제품의 개발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아직 한국과 미국 규제기관으로부터 허가는 획득하지 못한 상태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아이덴젤트’만 미국에서 특허 리스크를 해소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0월 아이덴젤트의 품목허가를 획득한 뒤 오리지널사 리제네론과 특허 합의를 마쳐, 올해 말 미국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출시 됐으며, 벨기에 브뤼셀 법원은 아이덴젤트가 오리지널 제형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법원은 아이덴젤트가 원제품의 제형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해 독일 출시에는 제동이 걸렸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
특허분쟁이 격화되면서 제약사들이 대응책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지난 2024년 ‘아일리아 특허 분쟁으로 살펴본 바이오 제약사의 특허 포트폴리오 전략’ 보고서를 통해 국내 제약사들도 특허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바이오시밀러 제약사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제약사의 특허 소송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부터 회피 설계와 철저한 특허 전략 수립이 필요해졌다”면서 “최초 시장 진입을 통한 시장 선점이 중요하므로, 물질특허 만료일 직후 출시를 목표로 제형·공정 특허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제언이 담겼다.
또한 신약 개발사에 대해서는 “제네릭 약물 진입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의 개량 특허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제형, 정제 방법, 배지, 투여 요법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 기술 개발 및 특허를 확보해야 독점적 기간과 지위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허 분쟁에서 국내사가 수혜를 입기 위해선 바이오시밀러 개발 외에도 제형 변경 등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는 방법도 있다. 대표 사례가 알테오젠이다.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인 미국 머크(MSD)의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에는 알테오젠의 피하주사 전환 기술 ‘ALT-B4’가 적용됐다. 알테오젠의 제형 전환 기술을 적용한 ‘키트루다 큐렉스’를 지난해 FDA로부터 허가받아 상업화했다. 특허 만료 이후에도 매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전략적 무기가 되는 셈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오리지널 제품을 보유한 빅파마들은 특허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제형 전환을 고려한다. 키트루다에 알테오젠의 기술을 적용해 제형 변화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라며 “앞으로도 빅파마들이 특허 절벽을 앞두고 여러 플랫폼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특허법원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약사 출신 이진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오리지널 제약사의 경우 물질을 변경해서 특허를 유지하는 에버그리닝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면서 “특허심판을 할 땐 기술 발전에 기여한 만큼 보호가 주어져야 한다는 시각이 전제돼 있다. 기술적으로 진보의 의미가 있다면 특허로 보호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