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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눈 내린 서울 성북구 정릉

연합뉴스 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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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정선 선임기자 =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세계유산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의 능이다. 신덕왕후는 태조의 첫 번째 왕비 신의왕후가 조선이 건국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자 조선의 첫 왕비가 됐다. 정릉은 합장릉이나 쌍릉의 형태가 아니라 단릉이다. 원래 조성됐던 능자리도 이곳이 아니었다.

정릉 정자각 [촬영 김정선] 2026.1

정릉 정자각 [촬영 김정선] 2026.1



정릉을 찾아가는 길은 비교적 간편한 편이다. 우이신설선 정릉역을 나와 건너편을 보면 인근 골목 시장과 정릉 안내판이 함께 있다. 주변 주택가 오르막길을 걷다가도 조선 건국 전의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버들잎 설화를 적어놓은 안내판과 정릉 이정표가 나온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나 싶을 때쯤 소박한 인상의 정릉 입구가 나타난다.

석물과 소나무 [촬영 김정선] 2026.1

석물과 소나무 [촬영 김정선] 2026.1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가 직선이지 않고 중간에 한 번 꺾인 모습은 지형 때문임을 짐작하게 한다. 1주일여 전 눈이 내린 뒤 이곳을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다니는 통행로에는 이미 제설작업이 이뤄져 있었다. 관람객 출입이 제한되는 울타리 안쪽 경삿길과 능침 일부에 눈이 쌓인 풍경이었다. 눈이 일부 녹은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보이지 않았다. 문석인은 있는데, 무석인은 없다. 문석인의 옷 주름은 멀리서도 선명해 보였고 간결하게 느껴졌다.

재실 [촬영 김정선] 2026.1

재실 [촬영 김정선] 2026.1



고려 권문세가의 딸이었던 신덕왕후는 태조의 경처(京妻·고향에 본처를 두고 서울에서 결혼한 부인)로, 태조의 세력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된다. 조선왕릉 누리집에 따르면 아들 이방석이 왕세자로 책봉됐지만, 신덕왕후는 1396년 세상을 떠났다. 태조는 신덕왕후의 능을 현재의 중구 정동(貞洞)에 조성하고 자신의 능자리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이방석은 신의왕후 아들인 이방원(태종)이 주도한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청계천 광통교 아래 [촬영 김정선] 2026.1

청계천 광통교 아래 [촬영 김정선] 2026.1


정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태종은 태조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원했던 자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 건원릉을 조성했다. 건원릉은 구리 동구릉에 단릉 형태로 있다. 태종은 또한, 정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종묘에 신덕왕후의 신주는 모시지 않았다. 이로부터 260여년이 지난 현종 때에 이르러 신덕왕후의 신주가 종묘에 모셔졌고 정릉의 일부 석물도 다시 만들어졌다.

옛 정릉에 남아있던 병풍석과 난간석은 태종 때 청계천 광통교를 다시 짓는데 쓰이도록 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현재의 광통교 아래로 가 보면 양쪽으로 축조된 돌 중 병풍석에 쓰이는 문양이 제모습인 것도 있지만, 거꾸로 뒤집혀 있는 것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두고 뭇사람들은 태종의 악감정이나 적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신덕왕후도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역사가 얽힌 몇백년 전 조각된 돌을 현대의 도심 교량 아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관람객에겐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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