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된 지 3년이 되던 2024년 2월5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에서 동자동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이 그동안 사망한 쪽방 주민들의 영정을 들고 지구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중 한곳인 동자동(용산구)은 ‘시간이 고인 공간’이다. 2015년 한 쪽방 건물에서 주민 45명이 한꺼번에 강제퇴거를 당했다. 한겨레는 쫓겨난 그들의 경로를 따라가며 1년(2015년 4월~2016년 5월 추적연재)과 5년(2020년 5월30일 토요판 커버스토리)을 기록했다. 세계가 초고속으로 질주하며 떨군 그들의 ‘10년 뒤 지금’(5부작)을 다시 좇았다. 강산이 열번은 변했을 시간의 속도 앞에서 가난은 독야청청 그대로였다.
정치권력이 순서를 바꿔가며 집권해도 ‘가난에게 한 약속’은 변함없이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소위 쪽방촌이라 불리는 동자동에서 왔습니다. 드시고 함께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세쪽씩 포장된 절편이 2024년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추위에 언 손들을 녹였다. 동자동(서울시 용산구) 주민들이 돈을 모아 준비한 떡 40㎏을 대통령 탄핵집회에 나온 시민들에게 “쑥스럽게” 나눠 줬다.
2년7개월 전 그 대통령의 취임 이튿날(2022년 5월11일)에도 동자동 주민들은 그의 용산 집무실 근처에 있었다. “새 정부가 용산을 국정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서는 눈앞의 빈곤부터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결의대회를 열었다.
“우리가 정부서울청사도 찾아가고 세종시 국토교통부도 찾아가고 다 했는데 지금까지 아무것도 된 게 없어요.”
백대진(가명·현재 68)이 마이크를 잡고 토로했다. 앞선 정부 때 발표됐으나 소유주 반대 등으로 한걸음도 떼지 못한 공공주택사업(2021년 2월5일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의 신속한 시작을 새 정부에 요구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국민이어도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인 거예요.”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 백대진은 사업 지체의 진짜 이유일지 모를 ‘진실’을 들췄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한 약속은 약속이 아니냐’며 따져 물었다. 맨 앞줄에선 위원장 고정국(가명·현재 69)이 손팻말을 들고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지구지정 기다렸다”는 문장이 그와 더불어 소리쳤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 백대진(가명)씨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튿날인 2022년 5월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서 열린 ‘동자동 쪽방촌 선이주 선순환 공공주택지구지정 촉구 주민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
“믿지 않을 수 없었는데…”
고정국과 백대진은 ‘노란집 동기’였다. 각각 101호와 206호에 살던 그들은 2015년 ‘동자동 노란집 강제퇴거 사태’(쪽방 건물을 외국 관광객 게스트하우스로 용도변경하기 위해 소유주가 주민 45명 전원에게 퇴거 통보) 때 한꺼번에 쫓겨났다. 노란집을 나온 뒤에도 그들에게 ‘정주’란 없었다.
고정국은 그해 5월 연희동(서대문구) 매입임대주택으로 ‘집단이사’한 노란집 주민 6명 중 한명이었다. 그는 5명의 동료들이 붙잡을까 봐 간다는 말도 없이 도망치듯 동자동으로 돌아왔다. 이사 뒤 두번째 월세 납부일 하루 전날이었다. 보증금 50만원도 포기했다. 무료 배식처를 오가며 식사를 해결해왔던 그가 연희동에선 밥 먹을 곳을 찾기 힘들었다. 새 이웃들로부터 ‘엘에이치(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데려온 사람’이란 시선을 받는 것도 싫었다. 돌아와서도 이사는 계속됐다. ‘귀향’ 뒤 첫 방에선 구더기가 쏟아졌다. 다락에서 쥐약 먹고 죽은 고양이한테서 생명들이 깨어나 벽을 타고 내려왔다. 두번째와 세번째 방에선 “옆방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워” 두달과 한달밖에 살지 못했다. 첫 방 건물로 “컴백”해 네번째 방을 얻었다.
고정국의 연희동 이사 날에 백대진은 노란집 2층 복도 창문으로 떠나는 트럭을 내려다봤다. 트럭엔 그의 짐들도 실려 있을 뻔했다. 그도 연희동 입주를 신청했으나 20년 전 연락 끊긴 가족과 부양 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탈락했다. 노란집에서 쫓겨나 옮겨간 건물에서도 백대진은 같은 처지에 몰렸다. 소유주가 쪽방 운영을 그만두고 건물을 양도하면서 세입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백대진도 후암동과 접한 골목으로 재이사했다.
동자동 주민들이 2021년 10월13일 세종특별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공공주택사업을 환영하고 흔들림 없는 시행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
“꿈같은 소식”이었다.
2021년 2월5일 텔레비전을 보던 백대진은 “흥분”했다. “전국 최대 서울역 쪽방촌이 최고 40층 아파트로 재탄생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국토부·서울시·용산구가 공공주택 1450호(임대 1250호+공공분양 200호)를 지어 쪽방 주민들의 재정착을 완료한 뒤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공급하는 ‘순차 정비’ 계획을 발표했다. “명품 주거단지”란 표현도 썼다. 사업성 부족(남산 고도 제한 등)으로 오랫동안 민간 개발이 무산돼온 땅에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국토부)으로 추진되는 주거환경 개선을 주민들은 크게 반겼다. 백대진은 “드디어 내 집이 생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나 “그렇게 대대적으로 약속했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강제퇴거를 반복하며 ‘가난의 경로’에서 이탈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 발표는 ‘일생의 사건’이었다. 고정국과 백대진이 공공개발을 희망하는 쪽방 주민들의 대표가 된 것도 노란집 강제퇴거와 무관치 않았다. “아무 때나 쫓겨나는 인생을 더 이상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백대진)다. “사람들은 ‘너희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게 산다’고 말하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에겐 공평하게 노력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1년, 2년, 3년….
“만천하에 공표한 약속”이 도무지 시작될 줄 몰랐다. 쪽방 건물주들(대상지 내 거주는 18.7%에 불과)은 집마다 빨간 깃발을 내걸며 거세게 반발했다. 발표 두달 뒤 재보궐선거를 치른 서울시장이 취임하고 이듬해 3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당선됐다. 공공개발(임대주택 의무 비율 35% 이상) 좌초 우려는 커지고 민간개발(임대 비율 15%) 기대가 상승했다.
두 사람과 동자동 주민들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항의 시위를 하고, 토론회를 했다. 국회의원들을 찾아가고, 각 정당·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도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담당자들을 만났고, 대통령실 앞에서 국토부 장관 집까지 행진도 했다. 시민 서명을 받아 제출하고, 주거 실태를 알리는 사진전과 토크콘서트도 열었다. “여기 올라가고, 저기 찾아가고, 안 간 데가 없고, 안 만난 사람이 없었”(고정국)다.
“우리는 내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광장을 함께 채웠습니다.”
동자동 주민들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해 9월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공주택지구 즉각 지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
‘노력’의 이중 의미
지난해 9월9일 동자동 주민들이 다시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에 섰다. 그사이 대통령이 바뀌어 있었다. 사업의 첫 단추이자 2021년 완료하겠다던 ‘공공주택 지구지정’은 전 정권이 내란 시도로 무너지기까지도 끼워지지 않았다. 계획 발표 뒤 세번째 정부 출범 100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주민들은 호소했다.
“모두의 주거권 보장으로 민주주의 내용 또한 채우고자 함께 싸워왔으나 우리의 주거권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약속에 묶여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자리에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없었다.
“5년 동안 국토부는 ‘소유주를 설득하며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녹음기 틀듯 반복하고 실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자” 지친 고정국이 직을 사퇴했다. “희망이 안 보여” 백대진도 같이 그만뒀다. ‘국민주권정부’의 주거취약계층 정책에서도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언급되지 않았다.
주민자치조직 ‘동자동사랑방’은 지난해 8월 국토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답변은 해를 넘겨 1월7일에야 왔다. 면담 여부나 진행 사항 알림 없이 “(…)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만 했다. 정부는 달랐지만 “협의 중”과 “노력하겠다”는 답변은 이전 정부들과 다르지 않았다. ‘노력’의 이중적 의미를 주민들은 모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노력은 삶의 태도를 평가받는 가혹한 잣대였지만 정부엔 책임을 미루는 핑계였다.
본래 2026년은 입주가 예정된 해였다. 인공지능(AI)이 초고속으로 ‘변화’를 밀어붙였지만 “시간이 멈춘 동네”(박승민 동자동사랑방 간사)에서 달라지는 것은 늘어나는 사망자 수뿐이었다. 공공개발 발표 뒤 지난해 연말까지 최소 151명이 입주는 물론 사업 개시도 못 보고 숨을 거뒀다. 그들 중엔 노란집에서 쫓겨난 5명도 포함(1월9일 화장된 1명까지)돼 있었다.
이젠 청와대 앞이었다. 오는 26일 151명의 영정이 동료 주민과 시민들의 손에 들려 대통령이 복귀한 청와대로 행진한다. ‘죽은 자들의 원망’이 ‘산 자들의 소망’을 품고 “정부에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한다. <끝>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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