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바야흐로 ‘자본소득 만세’의 시대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기세가 무섭다. 코스피 지수는 곧 5000을 돌파할 기세다. 작년 한해 76% 상승하며 주요국 중 상승률 1위였다. 1999년 이후 최대 상승이다. 아파트값도 거침없다. 서울 아파트값은 19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며 평균 15억원을 넘어섰다. 부동산 데이터 플랫폼 기업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사이 서울 25개 구 중 16개 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 상승액이 6000만원을 넘어, 서울 상용근로자의 연간 임금 5718만원(2025년 4월 기준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을 훌쩍 넘었다. 강남, 서초, 송파구는 무려 6배를 오간다. 1년 일해 번 돈의 6배를 앉아서 벌었다. 열심히 일하면 뭐 하나, 허탈해진다.
전에는 이런 한탄이 공감받았다. 요즘은 반론이 강하다. 아직도 불로소득같이 무지한 말을 쓰냐고, 투자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모르냐고 꾸짖는다. 과연 현대의 개인투자자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한 ‘야성적 충동’에만 의지하지 않고 참 열심히 공부한다. 성장률, 물가, 금리, 환율 등 거시지표 공부는 공통필수다. 주식 투자를 위해 산업별, 기업별 데이터에다 뉴스와 공시를 챙기고 각종 차트도 공부한다.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다. 가격과 매매량 등 거래 관련 지표, 입지와 지역 수요 연구, 재개발 정보에다 현장을 찾는 임장까지 공부하고 발품 팔 일이 산더미 같다.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해도 투자는 늘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 자본소득은 담대하게 위험을 무릅쓴 대가로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다. 근로소득에 안주하며 고만고만하게 사는 위험 회피자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듣다 보면 그럴듯해서 설득이 되는 것만 같다. 나는 한번이라도 저렇게 뜨겁게 살아봤던가? 나도 이런데 정치하는 분들은 오죽할까? 투자자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할까, 행여 세금 때문에 마음이라도 상할까 걱정이 크다. 여야가 따로 없다. 재작년 12월10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미 입법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 과세도 전격 유예했다. 일주일 전 윤석열의 계엄 내란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이던 때였다. 이판사판 싸우다가 이심전심 합의 처리했다.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위해 저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을까?
이재명 정부에 들어와서도 멈추지 않는다. 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고배당 기업의 주식 배당소득이 분리과세된다. 배당소득이 종합소득으로 합산되지 않고 별도 과세되면 배당소득자의 세율이 낮아진다. 노동자와 사업자보다 주식투자자에게 유리한 세제 개편이다. 상속세 면제 한도를 10억원에서 18억원으로 인상하겠다던 약속은 지난해 말 ‘2차 특검법’ 갈등 중에 무산됐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말했으면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진심일 것이다.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한시 면제됐던 증권거래세는 부활했지만, 불평등을 줄이려면 매우 많은 돈이 든다. 재정이 감당해야 하는데 두 당은 되레 감세 경쟁 중이다. 불평등 축소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노동과 사업보다는 투자에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이다. ‘투자노동’이야말로 진짜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다. 과연 그럴까? 자본소득이 노동의 대가라면 로또 당첨도 노동의 대가다. 인터넷에는 온갖 신묘한 통계기법과 판매점 정보 등 필승전략이 난무한다. 공부하라고 설파한다. “1등 당첨 보장 같은 허황된 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첨의 행운은 노력의 결과입니다.” 물론 로또 당첨이 노력의 결과가 아닌 것은 파리가 새가 아닌 것과 같다.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이 아닌 것도 본질은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자본소득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한다. 자본이 없으면 노력은 무의미하다. 자본소득은 소유가 발생시키는 ‘특권’이다. 자본의 크기도 중요하다. 똑같이 노력해도 자본이 클수록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노력이 아니라 자본의 규모가 투자 수익을 결정한다. 더 큰 소유에 더 큰 특권이다. 노동자는 일을 멈추면 소득이 끊기지만, 투자자는 추가의 노력 없이도 소득을 얻는다. 그걸 “자본에 일을 시킨다”고 표현한다. 소유자는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말이다.
이렇게 자본소득이 쌓이며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사상 최악이 됐다. 지난해 3월 기준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 통계 작성 후 최고다. 상위 10%를 중심으로 자산이 많이 늘었고, 하위 20%는 줄었다. 올해는 부동산과 주식시장 폭등으로 불평등이 더 커질 것이다.
자산 불평등을 키우려는 의도로 투자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 리가. 그저 좀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자식에게 안정된 미래를 물려주려 애쓸 뿐이다. 중산층이라면 더욱더. 이 범속한 욕망이 모여 어느새 아찔한 기울기를 만들어낸다.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구조적 부정의’라는 개념을 통해 지목할 악당이 모호한 불의를 성찰했다. 법을 지키며 자기 이해를 좇는 개개인의 행위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불의가 바로 구조적 부정의다. 기후위기, 각종 불평등과 차별처럼 성숙한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고통 중 상당수는 구조적 부정의라는 틀을 빼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악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부정의의 연결 고리 안에 ‘착한 우리’가 있다는 말이다. 윤석열 일당을 응징해도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동산이나 주가의 상승은 한 개인의 기예로 이룬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거대한 흐름과 인프라의 축적, 기술의 진보가 빚어낸 사회 전체의 결실이다. 자본소득은 이 공동의 결실을 개인의 금고 속으로 봉인한다. 합당한 세금 부과가 최소한의 정의인 이유다.
한때 ‘노동의 새벽’을 노래하던 이들이 ‘투자의 새벽’을 지새우는 오늘이다. 노동의 권리를 외치던 이들이 소유의 특권을 지키는 성채 위에 올라선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주가가 오르고 아파트값이 뛰어 설렌다 해도 마음 한편의 불평등 걱정 또한 진심일 것이다. 그 마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에 요구하자. 감세를 멈추고 합당한 과세의 언어를 회복하자고. 그리고 말하자. 나도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고. 세상을 바꾸자는 대단한 요구가 아니다. 그저 잠시 눈을 감고 노동의 새벽이 꿈꾸던 세상과 투자의 새벽이 빚어내는 현실을 떠올려 보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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