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
시대를 빛낸 스타들이 떠나고 있다. 텔레비전과 연극무대에서 활약한 배우 이순재,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빛낸 배우 김지미, 연극과 뮤지컬, 영화를 오가며 다양한 실험에 도전한 배우 윤석화, '한국영화의 페르소나'로 불린 국민배우 안성기.
대중문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중문화에는 2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대중이 좋아하는 문화(popular culture)다. 다른 하나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문화(mass culture)다. 매스미디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현상이다. 20세기와 더불어 출판은 텍스트를 매개로 책과 신문, 잡지의 전성기를 열었다. 필름은 이미지를 매개로 사진과 영화의 시대를 이끌었다. 라디오는 사운드를 매개로 방송의 시대를 몰고왔다. 매스미디어의 총아는 텔레비전이었다. 텔레비전은 출판, 필름, 라디오를 모두 통합하면서 대중의 눈과 귀를 완벽하게 장악한 대체 불가능한 미디어였다.
우리를 떠나는 배우들은 20세기 후반 대중문화를 상징한다. 이들은 대중문화와 함께 성장했고 그것이 구축한 스타시스템의 핵심에 있었다. 스타는 그저 유명한 개인이 아니다. 스타는 매스미디어가 만든 집단감정의 표준이자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표상이다. 대중문화 연구자 리처드 다이어는 스타를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가 조직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텍스트라고 말했다. 스타의 잇따른 부고는 우리 사회가 공유해온 어떤 공통의 감각이 퇴조하는 사건이다.
이순재는 텔레비전 시대의 표상이다. 텔레비전은 동시성을 무기로 대중을 한 화면 앞에 불러모았다. 세대와 계층이 달라도 같은 밤 같은 대사를 들으면서 일상의 감정을 교류했다. 김지미는 스크린의 황금기를 상징한다. 영화관이라는 집단공간에서 스타는 '빛'이었다. 관객은 그 빛을 따라 자신의 욕망을 투사했다. 윤석화는 무대를 공동체로 만들었다. 공연을 통해 우리 사회가 꿈꾼 공동체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안성기는 영화가 산업으로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연기의 윤리'를 놓치지 않은 배우였다.
대중문화는 국민국가와 함께 성장했다. 우리는 국가 체제를 건설하면서 대중문화의 체제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대중으로, 대중은 국민으로 상호 치환됐다. 대중문화의 시대가 저문다는 말은 사람들이 문화를 덜 소비한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대중문화라는 의미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이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와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바뀌었다. 21세기 플랫폼 시대는 이제 디지털콘텐츠를 중심으로 알고리즘 문화를 만들어낸다. OTT는 우리의 취향을 한 화면에 모으는 대신 그걸 세분화해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낸다. 이제 '국민'은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민배우'도 더이상 없다.
이런 현상은 문화의 권력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텔레비전은 편성이라는 권력을 통해 대중의 시간을 통제했다. 스타는 시간통제의 상징이었다. 텔레비전은 모두가 같은 것을 보게 했지만 플랫폼은 각자 다른 것을 보게 만든다. 이제 플랫폼은 편성 대신 추천을 통해 주의를 통제한다. 권력은 방송국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했다. 스타의 의미도 바뀌고 있다. 스타는 이제 대중의 표상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쪼개진 인플루언서다. 배우의 연기는 콘텐츠의 일부로 축소되고 인물을 둘러싼 서사, 즉 캐릭터와 사생활, 화제성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변화가 꼭 퇴행을 뜻하지는 않는다. 플랫폼은 기존 문턱을 낮추고 주변부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국가와 함께 성장해온 대중문화의 체제에서 벗어날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스타의 구술사 등과 같은 방식으로 대중문화 시대를 기억하는 아카이빙 작업이 필요하다. 더불어 플랫폼의 시대, 역동하는 기술과 산업의 체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주도해야 한다.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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