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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번호도 몰라요, 우린 ‘티슈 친구’니까

조선일보 조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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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에 부담느끼는 MZ세대
한번 만나고 헤어지는 모임 선호
“나이·직업 모르는 사이가 더 편해”
“자기소개는 생략하고, 새해 목표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지난 6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삼성역 근처 카페에서 20·30대 남녀 6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였다. 그런데도 서로 나이·직업을 묻지 않았다. 새해 다짐을 나눌 뿐이었다. “올해는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어요.” “일 때문에 못 봤던 연극을 마음껏 보러 다닐래요.” 1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는 “즐거웠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끝났다. 연락처 교환 같은 건 없었다.

이 모임은 평일 이른 아침에 주기적으로 열린다. 참석자는 매번 다르다. 주최자가 소셜미디어로 참가자를 모집해 평일 출근 한 시간 전 모였다가 헤어지는 식이다. 정원은 8명. 매번 신청자가 수십 명 몰려 몇 분 만에 마감된다고 한다. 이날 모임에 참가한 장나예(20)씨는 “다시 볼 사이는 아니니 뭘 말해도 부끄러울 게 없어 좋다”고 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과 한 번만 만나고 헤어지는 ‘일회성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모임 참가자들은 때마다 참석해야 하고 장기간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지인 모임과 달리 부담이 적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런 일회성 모임에서 만난 사람을 ‘티슈(tissue) 친구’라고 부른다. 필요할 때 한 장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한 번 만나고 미련 없이 헤어지는 관계란 뜻이다.


전문가들은 “지인과 약속을 잡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관계 유지를 위해 연락을 이어가는 과정을 MZ세대는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투자로 사회적 만족을 얻으려는 티슈 친구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여 각자 자기 일을 하다가 헤어지는 모임도 2030세대에서 유행이다. 대구에서 카페를 하는 이창수(37)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임 참가자를 모은다. 밤에 모여 자기 소개 없이 밤새 하고 싶은 일을 각자 하다가 헤어진다. 시험을 앞둔 대학생, 작가, 디자이너 등 누구든 참가할 수 있다. 밤새 뜨개질을 하거나 엎드려 음악만 듣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자기를 소개하거나 남의 신상을 묻는 건 금지다.


취미를 공유하는 티슈 친구 모임도 있다. 대학생 최희정(23)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만난 또래 여성과 음악 페스티벌을 찾아 하루 종일 음악을 즐겼다. 최씨는 “친한 친구들과는 좋아하는 가수가 달라 함께 가자고 말하기 어렵고 혼자 가기엔 뻘쭘할 것 같아 동행을 구했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이런 모임에는 이름이나 전화번호, 소셜미디어 계정 등을 교환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 연락이 이어지면 ‘익명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아주 잠깐만 관계가 연결됐다 끊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최항섭 국민대 교수는 “기성세대에겐 인맥이 ‘축적’의 대상이었다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맥은 ‘소비’의 대상”이라며 “관계 유지에 드는 부담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티슈 친구

필요할 때 뽑아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20·30대 사이에서 일회성으로 만나는 관계를 뜻한다. 공연 관람, 작업 등 공통된 목적을 위해 잠시 만났다가 번호 교환 없이 헤어진다. 큰 감정 소모 없이 소통하려는 젊은 세대 특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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