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용산CGV에서 다큐멘터리 ‘잊혀진 대통령: 김영삼의 개혁 시대’를 관람한 관객들이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가운데)과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고 있다./장경식 기자 |
1969년 6월 21일 아침, 국민학교 4학년생 김현철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집 밖에 나가 보니 아버지의 크라운 승용차에 분화구가 뚫린 듯 구멍이 나 있었다. 전날 밤 부친이 타고 귀가하던 차량을 향해 괴한이 질산병을 던진 흔적이었다. 훗날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그때는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하며 사실상 중정의 사주로 밝혀진 ‘질산병 투척 테러’ 사건이다. 그때의 국민학생이 지금은 부친인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기리는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현철 이사장은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그날 아버님의 차를 보면서 정치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구나 깨달았다”며 “그럼에도 온몸을 던지신 아버님께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무시무시한 정치’에 일생을 바쳤던 김 전 대통령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잊혀진 대통령: 김영삼의 개혁시대’가 오는 28일 개봉한다. 취임 초기 지지율 90%, 퇴임 지지율 6%라는 역대 최고·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가진 김 전 대통령을 집중 조명한 최초의 다큐 영화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다큐로 만들어져 관객을 만났으나, YS는 TV 다큐에서도 흘러간 시대의 인물로 스쳐지나갔다. 지난해 11월 서거 10주기를 맞아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퉈 YS를 귀감으로 언급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영삼의 정치’는 조국혁신당의 DNA”(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싸울 땐 싸운 대단한 분”(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현 시대에 빗대면 상남자, 테토남 같은 분”(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등의 평가가 잇따랐다.
정치권의 재조명 분위기에 다큐 ‘잊혀진 대통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날 서울 용산CGV에서 관객 100여 명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대화 시간을 가졌다. 다큐는 취임할 때부터 ‘만들고 싶은 나라’가 있었던 대통령 YS의 재임 시절을 보여준다. 32년 군부독재를 청산한 하나회 척결, 경제민주화의 기틀을 다진 금융실명제, 광주 시민들의 멍든 가슴을 위로한 5·18 특별법 제정 등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을 단행한 면모를 부각한다. 다큐를 기획·연출한 이재진 감독은 “YS의 개혁 정치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재와 싸웠던 YS의 어록은 결기로 가득하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를 죽일 수는 없다”처럼 지금도 회자되는 말들이다. 초등학생에게 한 조언도 그랬다. 이날 관객 대화에서 “김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가 궁금하다”는 질문이 나오자, 이 감독이 YS가 초등학교 일일교사로 나섰던 일화를 소개했다. YS에게 한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다른 남자애랑 사이가 좋아지는 것 같은데 어떡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YS의 조언은 명쾌했다. “반드시 싸워서 쟁취하라.”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자 김 이사장은 “아버님이 정치를 오래 하셔서 일상에서도 정치 용어를 많이 쓰셨다”고 했다.
YS는 자신의 아들을 구속시킨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했다. 1997년 이른바 ‘한보 사태’가 터지자 YS의 결단으로 김 이사장은 구속 수감됐다. “부친이 원망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 이사장은 “어떻게 원망스럽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며 “한동안 원망도 많았지만, 이제는 아버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재단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아버님은 늘 투쟁적으로 사셨지만 대화와 타협 또한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다”며 “이 다큐를 통해서 아버님이 강조하신 화합의 정치를 모두 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제가 아버님께 배운 정치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의 통 큰 정치였다”며 “라이벌 DJ가 어려워졌을 때 먼저 나서 덮어준 것도 아버님이셨는데, 요즘 정치인들도 그런 정신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잊혀진 대통령: 김영삼의 개혁시대’는 오는 22일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와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등을 초청해 ‘김영삼 정신’을 주제로 관객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정선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