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년 전남 나주에 살던 홍수원의 부인 진원 오씨가 친모를 잃은 손녀를 위해 쓴 요리책 ‘음식보’ 일부. 백화주·태화주·두강주·백병주 등 술 만드는 법이 쓰여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제공 |
“슬프다. 나이 든 내가 어미 없는 손녀를 두고 특별히 사랑했는데 세월이 물 흐르듯 하여 벌써 아홉살이 되었다. 이제 온갖 일과 여자의 도리를 배울 때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확보한 고문서 중 ‘음식보’는 전라도 음식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희귀 문헌으로 알려졌지만 이면에는 할머니의 손녀 사랑이 숨어 있다.
한글로 써진 이 책은 조선 영조 때인 1756년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홍수원(1702~1745)의 부인 진원 오씨(1698~1770)가 처음 썼으며 세번째로 들인 맏며느리 진주 정씨(1736~1802)가 의복 등에 관한 내용을 더해 완성했다. 삼해주·청명주·도화주·과하주 등 술 종류부터 기증편·잡과편·모희편 등 떡, 가지찜·소고기느름·석화느름·동치미·삼일식해·자렴 등 각종 먹거리까지 옛 음식 38종의 조리법과 용어를 알 수 있어 학술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누리집에 연재하는 ‘호남학산책’을 보면 김기림 조선대학교 기초교육대학 부교수는 생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키워진 손녀의 미래를 염려하는 오씨의 애틋함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전남 나주에 살던 진원 오씨는 장남 홍봉주와 며느리 총부 정씨 사이에서 첫 손녀를 얻었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총부 정씨가 1751년 22살 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손녀가 4~5살 때다. 홍봉주는 창녕 조씨와 재혼했다. 진원 오씨는 ‘손녀를 키워줄 사람을 얻게 됐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창녕 조씨마저 1752년 숨졌다. 홍봉주가 진주 정씨와 다시 결혼하며 진원 오씨는 한시름 놓았지만 새 며느리는 손녀딸을 가르치기에 너무 어렸다. 진원 오씨는 책머리에 며느리를 잇따라 잃은 사연을 적으며 “내 너(손녀)를 위해 생각하고 눈물 흘릴 때가 많았다”고 심정을 내비쳤다.
호남 지역 전통음식 조리법을 알 수 있는 음식보 표지. 한국학호남진흥원 제공 |
“여자의 도리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효행과 바느질 등을 밤낮으로 익히고 의복을 곱게 만들어 입어야 한다. 음식을 맛보아 아침저녁으로 아비 봉양에 힘쓰고, 제향을 맞이하게 되면 정성을 쏟아야 한다. 손님을 대할 때 정성을 다해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부모 섬김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출가한 뒤 시집의 친애함을 믿고 마음이 자만하고 몸을 게으르게 하면 남에게 이쁨받지 못하고 부모를 욕되게 한다. 시부모, 동서들, 시누이들을 우애와 공경으로 대해야 한다.” 오씨는 손녀를 위해 책머리에 염려와 당부부터 담았다.
김 부교수는 책에서 소개하는 음식이 매일 끼니로 먹는 것이 아닌 제사나 손님 접대에 적합하다고 봤다. 오씨가 환갑을 앞두고 9살 손녀에게 음식 만들기부터 가르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김 부교수는 “음식보에는 손녀가 시집가서도 흠잡히지 않도록 염려하는 할머니의 조바심이 엿보인다”며 “진주 정씨도 가풍을 굳건히 하려는 시어머니를 따라 여성들이 지켜야 할 복제, 알아야 할 시가 조상의 기일, 집안에서 처신할 행동 규범 등을 덧붙이며 가문의 예법, 가풍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여성들의 정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안동교 한국학호남진흥원 자료교육부장은 “호남 지역에서 발굴된 사대부 집안 여성이 한글로 쓴 요리서는 ‘음식보’가 유일하다”며 “음식보를 현대 한글로 해석해 전통 음식을 재현하는 조리책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