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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각본은 기재부, 국회는 꼭두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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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두 개의 단어가 떠오른다. 법과 예산이다. 그러나 국회는 법에 대한 권한은 강하지만, 예산 심의 권한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기재부(현 기획예산처)가 각본을 쓰고, 기재부가 감독하는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쓰고 꼭두각시라고 읽는다)에 불과하다.

2026년 예산안 심사를 돌아보자. 국회는 오랜만에 법적 처리 기간을 지켰다고 긍정적으로 자평한다. 많은 언론도 이를 긍정적으로만 묘사한다. 물론 기한을 맞춰 숙제를 제출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숙제의 완성도다. 나는 2026년 예산안 심의가 근래 최악이라고 평가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국회의 예결위 예산안 심의 절차를 알아야 한다.

예결위는 예결위 전체회의와 예결소위로 나뉜다. 전체회의는 주로 정치적 발언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실제 정부 예산안을 증액하거나 감액하는 곳은 예결소위다. 예결소위에서는 상임위에서 다룬 예산안과 예결위원이 제출한 약 1000건에 육박하는 안건을 논의한다. 그런데 정부 예산안은 약 1만건에 달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약 9000건은 어떻게 될까? 정부 원안이 국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채 프리패스로 통과된다. 그렇다고 해서 논의되는 1000여건이 제대로 심사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예결소위는 일단 감액 심의부터 한다. 여야 합의에 따라 원안 통과 또는 감액 통과로 나뉘고, 합의가 안 되면 ‘보류’한다. 이를 통상 ‘1회독’이라 한다. 1회독이 끝나면 예전 같으면 적당한 명분을 찾아 상대편 멱살을 잡곤 했다. 언론은 멱살잡이의 이유를 설명하곤 했지만, 기실 진정한 목적은 파행 그 자체인 경우도 종종 많았다. 파행되면 교섭단체 간사끼리 비공개 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소소위’다. 법적 근거도, 공식 기록도 없는 비공개 협의체다.

국회선진화법 이후에는 이런 파행조차 어려워졌다. 대신 1회독이 끝나면 위원장이 “그동안 우리는 총 XX건을 논의해서 원안 통과 얼마, 감액 통과 얼마 하고 보류가 YY건 남았다. 보류된 것은 간사 간 협의(소소위)로 넘기겠다”고 말하며 곧바로 비공개 협의체로 넘기곤 했다.

그런데 2026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는 1회독 이후에 이러한 절차적 설명조차 없이 공식 회의를 열지 않은 채 보류 안건을 비공식 간사 협의체에 넘겼다. 즉, 예결위원도 자신이 얼마를 감액했는지 모르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언노운-언노운(unknown-unknown) 위기다. 감액 심의가 끝나지 않은 채로 간사 협의체에 넘어갔으니 증액 심의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2026년 예산안이 공식 국회 심의에서 얼마나, 왜 감액되었는지는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국회 심의 결과를 분석해봤다. 국회 감액은 흔히 불요불급한 사업을 줄여 국민의 세금을 아끼는 과정이라고 오해된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무늬만 감액’이다. 예컨대 2026년 국회는 기초연금이나 부사관 인건비를 감액했다. 그렇다고 법적 의무지출인 기초연금을 덜 지급하거나 부사관 인건비를 덜 줄 수는 없다. 이는 실질 지출을 줄이는 게 아니라 추계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런 감액을 하는 이유는 국회 증액의 재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결국 정부안을 줄이기 위한 감액이 아니라, 국회 증액 규모를 늘리기 위한 감액이다.

이런 방식으로 마련한 국회 증액의 승자는 누구일까? 2026년 국회 증액의 승자는 ‘광주’다. 23건의 증액사업으로 1300억원을 확보했다. 반면 국민의힘의 예결위 불참으로 국회 증액 자체가 없었던 2025년을 제외한 가장 최근인 2024년에는 부산과 대구가 각각 25건 내외의 추가 예산을 확보했다. 해마다 증액의 중심 지역이 바뀐다는 건, 국회 예산 배분이 전략이 아니라 힘겨루기라는 뜻이다. 이러한 힘겨루기가 과연 지역균형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미지수다.


그럼 어떻게 할까? 첫째, 국회 예산안 심의를 10월부터는 시작해야 한다. 현재는 국감을 10월에 하고 예산안 심사는 11월부터 시작한다. 물리적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국감은 상시국감 또는 6월 결산 국회 때 하자.

둘째, 비공개 간사 협의체를 없애진 못해도, 최소한 기록에는 남겨야 한다. 현재는 공개는커녕 기록조차도 없이 사실상 비공개 간사 협의를 진행한다. 비록 공개할 수는 없어도 기록은 남겨야 한다. 수십년 뒤 우리 후손이라도 왜 감액, 또는 왜 증액되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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