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호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
“김시습(1435~93)은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최근 200자 원고지 3만매가 넘는 ‘신편신역 김시습 전집’(전 6권)을 펴낸 심경호(71)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회장 소종섭)와 부여문화원이 간행한 이 전집(비매품)의 번역과 주해를 오롯이 홀로 맡았다. 출간 재원은 김시습이 세상을 떠난 무량사가 있는 부여군과 시민 후원자들이 댔다.
“김시습은 글에서 네가 유교를 택하든 불교를 택하든 그 이론에 충실하냐고 묻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같이 하느냐는 거죠. 김시습은 저한테도 묻고 있어요. 그래서 김시습은 살아 있죠.”
그는 자신이 정년 이후에도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며 한국 사상사 연구에 힘을 쏟는 것은 김시습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고 했다.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20대 중반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그는 15년 전엔 11시간 가까운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저는 대학 3학년 때 학생 운동을 하다 좌절을 겪고 학문을 선택했습니다. 저에겐 학문이 바로 (김시습이 말하는) 실천입니다.”
정년 직후인 2021년 초 대저 ‘한국의 석비문과 비지문’(일조각)을 펴낸 그는 이번 전집에 이어 곧 두권으로 된 성호 이익 연구서를 펴낼 예정이다. 6년 전엔 다산 정약용 시 2천수 번역도 완료하고 책으로 묶을 구상 중이다. 국가가 문학을 어떻게 장악했는지 밝힐 의도로 2권 분량의 과거 시험 연구서도 쓰고 있다. 집필의 종착점으로 생각하는 여든까지는 필생의 목표인 ‘한국 한문학사’와 ‘한국 논리학사’도 펴낼 계획이다.
“천천히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저는 한쪽 눈으로만 봅니다. 언제까지 미세한 글씨를 볼 수 있을지 몰라요. 보이기 전까지는 해야죠. 앞으로 집필할 시간은 10년 남았다고 생각해요.”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캠퍼스에서 심 교수를 만났다.
신편신역 김시습 전집. |
그는 2000년에 김시습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번역 출간했고 3년 뒤엔 ‘김시습 평전’(돌베개)을 냈다. 이 평전에서 그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분노해 승려가 되어 세상을 유랑한 ‘생육신’ 김시습의 절의에 초점을 맞춘 기존 해석과 다르게, 김시습이 ‘국가 이데올로기’인 유교 외에 불교와 도교의 사유에서도 진리를 찾으려 한 사상가의 면모를 비중 있게 다뤘다.
먼저 전집 출판 경위를 물었다. “2천년 무렵부터 조금씩 번역을 해오다 2022년에 김시습기념사업회 요청을 받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죠.”
전집에는 ‘십현담요해’ ‘임천가화’와 같은 불교 저술과 김시습에 대한 당대와 후대 평가 글까지 담았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에서 낸 기존 전집에는 없는 내용이다. 앞선 전집과 특히 차별화되는 점은 김시습 글 이해에 도움이 되는 풍부한 주석과 해설이다. 수천여개의 주해는 대학원 시절부터 김시습에 주목하고 일본 교토대에서 고증학을 배워 박사 학위를 받은 번역자의 학문적 내공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이번에 새로 밝힌 김시습 글의 전고(典故·근거가 되는 문헌 속 사건이나 인물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김시습의 어떤 편지 시에 ‘당신과 만나는 것은 ‘성 바깥의 우유’를 마시는 것과 같을 텐데’라는 내용이 나와요. 평전을 쓸 때만 해도 ‘성 바깥 우유’에 대한 고사를 몰랐어요. 그러다 우연히 고려 불교 승려 문집을 보니 ‘성 안의 우유는 가짜가 많고 성 밖 우유가 진짜’라는 고사가 있더군요. 그 사람의 말이 진실하다는 비유로 김시습이 끌어온 거죠.”
선조 때 국가가 간행한 ‘김시습 전집’에서부터 이어진 오류도 이번에 바로잡았단다. 김시습이 양양 부사 유자한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당나라 도사 이름 ‘나지원’이 ‘나공원’의 오류임을 밝힌 것이다.
“(성리학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는) ‘장자’를 가르쳐달라는 유자한의 요청에 김시습이 그러면 벼슬까지 반납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당 현종과 대화를 나눈 술사의 예를 드는데요. 김시습 당대 조선에서 간행된 ‘태평광기’에서 그 술사가 나공원임을 확인했죠. 김시습은 자기 시대 조선에서 출간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과거 공부만 하는 사람들과는 달랐죠.”
대학원 시절 김시습의 어떤 점에 그렇게 끌렸냐고 하자 그는 “김시습은 당신의 사상을 살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졌다”고 답했다. “네가 유학을 공부했으면 유학의 사상을 살고, 불교나 도교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말을 이었다. “대학원 은사인 정병욱 선생님이 사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1970년대에 낸 김시습 전집 서문을 쓰셨어요. 대학원 때 그 글을 보니 김시습을 하나의 이념에 뿌리박지 못하고 진동하는 사람으로 보셨더군요. 그때 김시습에게 관심이 생겨 공부해보니 ‘사상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었어요. 김시습은 선구적으로 실천과 이론의 괴리를 문제 삼은 사람입니다.”
그는 김시습이 중국 조동종 승려 상찰의 저서 ‘십현담’을 주석한 ‘십현담요해’를 예로 들며 말을 이었다. “십현담요해의 핵심 메시지는 ‘피모대각’입니다. 털을 입고 뿔을 이는 소가 되라는 거죠. 나 혼자만 득도해서는 안 되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보살행을 해서 공동구원을 하라는 겁니다. 김시습은 ‘임천가화’에서도 주지와 불교 종단을 계속 비판합니다. 불교 승려는 원래 똥 닦은 거로 만든 옷(분소의)을 입어야 하는데 국가가 만든 큰 불당에 앉아 대접받고 있다고 비판하죠. 만해 한용운은 일제 강점기에 설악산 오세암에서 십현담요해를 읽고 김시습의 뜻을 받아들여 십현담 주석을 새로 했죠.”
그가 보기에 김시습은 글과 활동에서 평등과 공동선의 메시지를 줄기차게 발신했다. “김시습은 비구니를 위한 글도 두편 썼어요. 그가 비구니가 남긴 게송을 모아 정리한 글을 보면 부처님 바다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내용이 나와요. 그런데도 비구니들에게 신분적 제약을 가해 3년 동안 비구에게 종속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합니다.”
김시습의 별칭 중 하나가 ‘오세’이다. 설악산 오세암도 여기서 따왔다. 김시습이 다섯살 때 세종 앞에서 시를 짓고 왕의 칭찬을 받은 뒤 세상 사람들이 이름 대신 오세라고 불렀다고 한다.
‘시인 김시습’을 평해달라고 하자 그는 “시가 사상이 깊다”고 했다. “음풍농월 같아 보이는 시도 하나하나 다 사상이 담겼어요. 선불교가 녹아 있어서죠.”
3만매 넘는 원고에 주석·해설 수천개
2003년 평전 내기 전부터 꾸준히 번역
4년 전 김시습사업회 의뢰로 본격 작업
불교 저서와 김시습 평가 글까지 담아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번역 오류 잡아
“김시습은 ‘너의 사상을 실천하라’며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문제 삼았죠”
그는 ‘무제’라는 시를 예로 들었다. ‘뜰 풀 우거지자 뜰 나무 푸르고/ 들 해당화 핀 곳에 맑은 향기 풍겨 난다/ 밤비가 갓 개어 범궁(梵宮·사찰)이 환한데/ 어미 제비는 처마의 진흙을 여전히 물고 있네’.
“제비가 절간에 집을 짓는 시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세상 이야기가 없어요. 하지만 시인은 절간이라는 인공적이고 권위적인 거대한 종교 공간과 자연에 삶을 맡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대비합니다. 민중을 직접 노래하지 않아도 제비 노래 속에서 그 뜻이 드러나죠. 김시습은 대단한 시인입니다.”
그는 “김시습이 한시 형식을 완전히 장악한 점”도 강조했다. “사실 한시는 형식이 중요한데요. 고문, 변문, 불교한문 등에 따라 다 다릅니다. 김시습은 각 형식에 맞춰 능숙하게 시를 썼어요.”
그는 “한국 최고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자신의 한시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라며 말을 이었다. “한시가 들어가는 상량문은 한시 최고 실력자만 지을 수 있어요. 변문인 데다 6개 압운을 맞춰야 해서죠. 금오신화 ‘용궁부연록’을 보면 용왕 딸이 결혼해 새집을 지으면서 상량문을 짓습니다. 지었다고만 해도 되는데 김시습은 직접 상량문을 짓습니다. 금오신화 ‘이생규장전’을 보면 남녀가 주고받는 시가 나오는데요. 보통 시가 아니라 한시에서 제일 어렵다는 ‘사’입니다. 음악 선율에 맞춰야 해서 보통 한시보다 짓기가 훨씬 까다롭죠. 금오신화 ‘남염부주지’에는 여성 원혼들이 나오는데요. 수더분하거나 정숙한 혹은 에로틱한 원혼의 특성에 각각 맞게 시를 짓습니다. 김시습은 오늘날 한강 같은 사람이죠. 한강 작가가 글의 형식이 완벽하잖아요.”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 한시의 최고봉은? 심 교수는 김창흡, 김시습, 정약용 셋을 거론했다. “김창흡 시는 상징적이고 기법 면에선 최고죠. 김시습은 상징성은 떨어지지만 깊이가 있어요. 다산은 주제의식이 강렬해요. 지식으로 쓴 시가 많아 번역이 어렵습니다.”
그는 안평대군의 삶과 예술을 다룬 ‘안평-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2018)으로 44회 월봉저작상을 받았고 2022년에는 3·1문화상을 수상했다.
심경호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
김시습 외에 연구 대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인물이 누군지 묻자 그는 정제두 등 강화학파 사람들과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을 꼽았다. 그는 강화학파 정제두와 이충익, 심대윤의 사상을 소개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9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성호는 이일분수(理一分殊·하나의 이치가 만물에 나뉘어 다양하게 나타난다)에서 ‘분수’를 중요하게 봤죠. 리를 괄호 속에 넣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봤어요. 그래서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그에게는 과거의 이론 체계를 부술 자신의 이론은 없었어요. 그러니 경험 사실을 가지고 자꾸 의심했어요. 학문적으로 성호가 없었다면 한국 사상계는 단조로웠을 겁니다.”
다산을 두고는 “체계를 세우려고 한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저는 동양 산문에서 명말 청초 사상가인 고염무가 쓴 일지록 서문과 고염무를 학문적 라이벌로 여긴 다산이 일지록 서문에 영향을 받아 쓴 아언각비 서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언각비는 바른 말로 잘못된 것을 깨우친다는 뜻인데요. 언어사회학 책이지만 사실은 사회 비판서입니다. 다산에게 아언은 표준개념입니다. 그는 아언각비 서문에서 학(학문)을 재정의합니다. 주자에게 학은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본받는 것이지만 다산은 잘못된 것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산은 이처럼 자신의 체계를 세우려고 했어요.”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이들은 공통적으로 고정관념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지금껏 한국 사상계는 극이 복수인 타원을 그리면서 발전해왔어요. 김시습만 해도 유교와 불교라는 두 원을 포괄하는 타원을 그리고 두 극 사이 어딘가 있는 중점을 고민했어요. 두 개의 다른 극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그다지 하지 않은 점은 아쉽죠. 지금 한국 사상계를 보면 하나의 원을 그리고 그 중점만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성호를 자꾸 퇴계학에 연결하려고 하잖아요.”
김시습 이후 유교와 불교, 도교를 함께 고민하려 한 사상가는 찾기 힘들다. 주자학 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사문난적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어떻게 봐야 할까? “불교는 출가의 사상이잖아요. 사회적 실천의 시스템이라든가 국가 운영 시스템으로는 유교가 아니면 안 된다고 본 거죠. 인간의 구원 이런 문제는 필요 없었던 거죠. 그러니 불교에 대해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김시습 이후로 거의 유일하게 불교를 공부한 사람이 김만중입니다. 제가 김만중이 쓴 서포만필을 번역한 이유입니다. 그는 거기서 주자가 불교를 공부한 사람이라고 과감하게 이야기합니다. 서포만필을 남해 귀양 때 썼는데요. 생전에 출판이 안 됐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 있었어요. 만약 출판됐다면 사문난적으로 몰렸을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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