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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에 휘둘린 언론…“법 개정해 재발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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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헌릉로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헌릉로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남의 4년 전 음주운전 기사가 삭제되거나 수정된 사건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이에 연루된 언론사가 적어도 13곳으로 집계됐다. 제목을 수정했던 한겨레를 포함해 주요 신문·방송사들이 대거 ‘자본에 의한 편집권 침해’ 사태로 내홍을 겪으면서, 재발 방지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편집권 침해를 막기 위해선 법 개정 등 제도 정비가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각 언론사 등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9월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아들 정창철씨의 2021년 음주운전 사고와 약식기소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와 이후 정씨가 벌금 900만원 약식명령을 받은 소식을 전달하는 기사 등을 삭제하거나 기사 본문·제목을 바꾼 언론사는 모두 13곳이 확인됐다. 온라인 기사를 아예 삭제한 곳은 7곳으로, 기존에 알려진 에스비에스(SBS)·문화방송(MBC)·와이티엔(YTN)·세계일보·뉴시스·연합뉴스티브이(TV) 외에 조선일보도 기사 2건을 삭제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조선일보는 2021년 8월12일 ‘정의선 회장 장남, 만취 운전하다 가드레일 ‘쾅’…검찰 조사’ 기사와 같은 해 10월5일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 ‘음주운전’ 벌금 900만원’ 기사를 온라인에 게재했다가 삭제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삭제 이유 등을 묻는 한겨레 질의에 “본사는 기사 수정·삭제 시 작성한 기자와 출고 부서 데스크, 편집국장 등의 협의와 승인을 거치도록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번엔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현재 경위를 파악 중이며,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 밖에 한겨레·연합뉴스·뉴스1·시비에스(CBS)·서울신문·한국일보 6개 언론사는 현대차 로비를 받아 기사 제목 또는 본문을 수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가 일어난 시점은 정창철씨가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 일본 현지법인인 현대모빌리티재팬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시작하던 때로, 후계 구도 관련해 현대차 쪽이 정씨 관련 부정적 기사들을 지우려고 전방위 로비를 벌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언론사 상당수는 삭제 또는 수정한 기사를 원상 복구하고 독자와 시청자에게 사과하는 한편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섰다. 에스비에스는 기사 복구 뒤 내보낸 별도 알림 기사에서 “앞으로 기사 삭제 또는 중요 내용 수정인 경우 관련 부서장들의 협의와 보도책임자의 승인을 의무화하고, 삭제 이유 등 의사결정 과정을 전산시스템에 기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화방송과 한국일보도 복구된 기사 뒤에 “부적절한 사유로 삭제된 사실이 확인돼 재게재한 것” “신중하지 못한 판단으로 독자 여러분께 혼란을 끼쳐드려 유감을 표합니다”라고 사과 알림을 덧붙였다. 이 밖에 와이티엔·뉴시스·연합뉴스·연합뉴스티브이 등 언론사들은 온라인 기사의 수정과 삭제 관련 내부 권한과 절차를 재정비하고 관련 기록을 남기는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한겨레도 독자 사과·제목변경 원상회복 조처에 이어 대표이사, 편집인, 뉴스룸국장 등이 책임을 지고 사퇴 뜻을 밝히거나 보직 사퇴를 했다. 또 회사 쪽 저널리즘책무실과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기사 무단 수정 및 삭제 의혹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활동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최근 3년여간 통상적인 사유 또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한 사례가 또 있었는지 조사한 뒤 조사보고서를 펴낼 계획이다.



언론계에선 주요 광고주의 목소리가 방화벽 없이 주요 언론 뉴스룸으로 침투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연루된 언론사 상당수는 내부에 노동조합과 공정보도 관련 노사 협의기구가 있는데도 사건이 발생한 점을 들어 보다 강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다. 방송의 경우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확대하는 한편 개정 방송법이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에 설치를 의무화한 편성위원회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지역 민영방송에도 이를 확대해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나아가 방송 편성에 관해 누구도 규제·간섭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방송법(4조2항)을 이번 현대차 사태에 적용하는 동시에 과거 법 개정으로 사라진 신문법 처벌 조항도 되살려야 한다는 제안도 거론된다. 과거 신문법은 “누구든지 신문 및 인터넷신문의 편집에 관해 … 어떠한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다”(3조2항)고 규정하고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내용을 담았으나 지난 2009년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 날치기 통과 당시 슬그머니 삭제됐다. 정연우 세명대 명예교수(광고홍보학)는 “관련 조항을 부활하면 언론사와 광고주 모두 기사·제목의 삭제·수정 요구가 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도전이고 법 위반이란 사실에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언론사에서도 광고주 개입을 차단할 방어 논리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이 공공성에 토대를 둔 저널리즘의 가치를 복원하는 과정을 거쳐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언론이 저널리즘 구현에서 중요한 공공성과 같은 가치를 점점 논의하지 않으며 의식이 약해진 가운데 반대로 더 커진 자본 권력의 영향력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언론의 존재 이유가 사회에서 부정당하며 언론의 전망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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