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
겨울 산사, 선암사 가는 길. 양옆으로 감나무가 끝없이 늘어서 있다. 감은 거의 떨어지고 나무마다 여나무개씩 달려있다. 굵은 장두감이 많고, 단감도 있고, 고욤이라 하는 토종 똘감, 호두알만 한 땡감도 보인다. 어릴 때 초가 뒤안에서 아직 떫은 푸르딩딩한 감을 가지째 끌어당겨 된장 발라 한번 베어먹고 뒀다가 조부에게 야단맞고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요새는 누가 감을 따 먹지를 않아 길바닥에 질퍼덕 홍시 속살이 널려있다.
저무는 연홍빛 하늘을 뒤로, ‘맨 꼭대기 가지/ 언 홍시에 부리 넣는 새’의 풍경은 아름답다. ‘봉수대 아래 작은 암자에서/ 능금과 감은 가난한 등불/ 그 안에 주석하는 벌레와/ 얹혀사는 수행자의 소신공양’, 시인 장석은 감을 ‘등불’이라 했다. 주먹만 한 대봉감은 꼭 호롱불 같이 생겼다. 감을 등불이라 하니,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네가 너의 등불이니’라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상한 음식을 자시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자 아난이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물으니,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했다는 부처의 유언.
조계산 선암사는 주지가 셋이었다. 태고종 주지, 조계종 주지, 재산관리인 순천시장 주지. 2022년 광주고법이 선암사 손을 들어주고, 이듬해 대법원이 조계종 재심 신청을 각하함으로써 반세기 분규는 끝이 났다. 이후 첫 주지를 승범 스님이 맡았다.
저 길가의 감나무는 누가 심은 거냐고 물으니, “한 30년 넘었을 거라, 시장 주지가 심었지요”라며 웃는다. 순천시가 가로수 정비사업으로 심은 것인데, “가을에는 주렁주렁 보기 좋아도 겨울에는 땅바닥이 빨개. 어느 날 스님들이 감을 몽땅 따려 하자, 혜능 선사가 그랬다잖아요, ‘겨울 새들 몫은 남겨두어라’고. 지금 오시면 뭐라 할까? ‘너무 많이 남겨 놓았더라’ 그러겠지요. 먹을 것이 널린 세상이라, 들은 다 새들 차지”라 한다.
승범 스님, 절에서 태어났다. 조부도 스님이고, 아버지도 스님이었다. 만해가 ‘승려의 혼인을 허(許)하라’ 한 것이 1910년이니, 100년 넘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면서 민중의 의지처로서 절의 소임을 맡아, 태고종 전통으로는 3대가 스님인 내력이 꽤 있다고 한다. 용흥사라 불리는 전남 고흥의 초암(草庵)에서 태어나 부처님과 한방에서 먹고 자는 인법당(人法堂)에서 자랐다. 중학교 졸업하고, 자연스레 출가했다. 1976년 지허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했다. 올해 법랍 50년이니, 조-태 분규의 시종을 같이한 산 증인이다.
선암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땅에서 가장 옛 절다운 옛 절. 들어가면서부터 그윽함이 느껴지는 절’(한승원)이라는 말처럼 천년 가람으로 원형 보존이 높이 평가됐다.
“경내 전각 요사채 42동 중에 박물관 등 4동만 해방 이후에 지은 것이고, 나머지는 전부 조선시대 것이에요. 물론 개보수는 했지. 예산도 없을뿐더러 주지가 셋이라, 누가 마음대로 헐고 짓고 그런 불사를 하려야 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원형 보존이 당사자한테는 참 불편한 말입니다. 길가의 감도 안 따 먹는 세상에, 우리는 화장실을 쓰는 게 아니라 ‘측간’(廁間)과 ‘뒤ㅺᅟᅡᆫ’을 쓰잖아요.” 분규의 산물이자 가난의 선물이기도 한, 원형 보존은 말하자면 역설이다.
선암사는 매화 피는 3월 하순에 많이들 찾는다. ‘꽃이 바람의 색(色)’이라는 하이쿠(17음절로 이뤄진 일본의 정형시)는 시간이 멈춘 선암사의 뜰과 같다. 고개를 둘러 어디를 봐도 집과 돌과 꽃과 문과 연못이 어우러진 풍경은 고졸하고 은은하다. 곱게 늙은 자연 미인 그대로다. 불사라는 이름으로 시멘트 기둥에 나무색을 칠하고 머리에 팔작지붕을 얹은 요상한 전각들, 해인사 행자가 천연기념물이라는데, 출가승은 현저히 줄어드는데, 건축물은 왜 자꾸 늘어나는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옛 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이 겨울에, 무우전 돌담 옆 홍매 일곱그루는 잘 있는지, 대들보가 없는 원통전 뒤뜰 백매는 또 잘 있는지, 경내를 슬렁슬렁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소설가 조정래, 시인 김초혜 선생 내외를 만났다. 전에 한 인연이 있어, 어인 일이시냐 여쭤보니, 노부부 반가워한다. 시인 왈, “조 선생 작품 때문에 왔어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춘향전보다 더 애틋한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소설가는 “화가 지망생인 처녀와 철학을 공부하는 총각이 선암사를 배경으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인데 제목이 ‘서리꽃’이라 한다. 밤새 서리가 내려 피었다가 해가 뜨면 사라져버리는 잠깐의 꽃. 1부는 선암사를 배경으로, 2부는 프랑스로 갔다가, 3부는 고흐를 쫓아 암스테르담까지 간다. 조계산에 달이 뜰 때 산 너머로 두마리 학이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책을 다 읽은 것 같다. 2년간 유럽, 작품의 공간을 두루 다녀왔다고 한다. 왜 마지막 작품인가 물으니, 올해 84살, 건강이 거기까지 허락할 것 같다고 했다.
1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두문불출 연락두절, 4월에 탈고하여 6월에 출간한다고 하며, 시작했으니 절반은 쓴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저절로 써진다고 한다. 식지도 않는 저 열정은 어디서 오는지, 이 대목 입이 딱 벌어진다. 내려가는 노부부 뒷모습이 늙은 절과 잘 어울린다.
스님, 차를 한 잔 내어준다. “팔순 넘어서도 무엇을 놓지 않고 정진하는 것, 대단하지요? 조 선생 선친 종현 스님도 만해와 비밀 결사를 함께한 독립운동가이고 시조 시인이자 대단한 학승이었지요. 전각 개보수할 때 더러 그분이 쓴 상량문이 나오기도 합니다”라면서 참 귀한 인연이라 했다.
그는 무엇을 이루는 데 있어 간절함과 정성에 대하여, 어릴 때 아버지 절에서 보았던 할머니들 불공드리는 얘기를 꺼냈다. “보통 절에 음력 초하루 보름에 오고, 초파일 칠석 백중 동지에 많이들 오시거든. 제일 먼저 뭐를 하냐면 상에 쌀을 부어 온전한 것만 일일이 골라요. 자정이 되면 머리 감고 목간을 하지. 새벽길을 나서 30리 넘는 산길을 걸어옵니다. 겨울에는 덜 마른 낭자머리가 땡땡 얼어요. 쌀과 떡을 들고 이고, 도중에 땅에 내려놓지 않으려고 용변도 미리 보시고. 가다가 뱀을 만나면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갑니다, 부정 탈까 봐. 새벽 예불 맞춰 4시경 절에 도착해요. 절에서는 오는 대로 축원해 드리거든. 차례를 기다렸다가 기도하고 축원 받고, 아침 공양 한그릇 자시고, 다시 산길을 거슬러 내려갑니다. 배운 것이 없어 무아나 연기는 모르지만, 신심 하나는 스님들 뺨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줄 아세요? 축원 내용을 물어보면, 열이면 열 다 자식 얘기합니다. 잘되게 해 달라고, 불공이 그런 거라.”
참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조모 그 정성 위에 우리가 건사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불교에서 기복(祈福)이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저 간절함을 보면, 기도라는 것이 누가 들어주는 것이라기보다 팔할은 제 몫이 아닌가 싶다. 스님 말마따나 불교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라 하니.
이제 선암사가 태고종 총본산으로 넘어와서 불사를 양껏 해도 되겠다고 물었다. 승범 스님은 32대 주지에 선출될 때 공약을 내걸었다. 편의시설 확충, 대웅전 복원, 성보박물관 신축, 세계문화유산 위상 정립 등 불사 관련이 많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압니다. 경내는 부지도 없고 문화유산이라 아예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우리가 ‘싸움하는 절’이라는 오명을 받은 긴 세월, 가난을 등불 삼아 살아왔어요. 선암사가 변하면 선암사가 아니지요. 그러나 딱 하나, 여기 낡은 승방과 객실을 템플스테이 방으로 쓰거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워요. 에어컨도 없고 화장실 샤워실도 없어. 방에서 지네가 나오면 기겁을 하지요. 사람들이 머물지를 않아요.” 스님은 그러면서 명색이 세계문화유산인데 경외에 그것 하나는 지었으면 한다고 말미에 속뜻을 얹었다.
겨울 산사는 잘 있는지, 늙은 매화나무 위로 싸락눈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생각을 좀 비워볼까 하여 올라갔다가, 지네가 나오는 방 이야기, 등지게 한짐 얻어지고 순천 주지가 심었다는 그 감나무길을 되돌아 느릿느릿 내려왔다.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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