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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진 | 국립순천대 애니메이션문화콘텐츠스쿨 학술연구교수
뉴스는 검색하면 나왔고, 포털을 열면 떴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넘기다 보면 따라왔다. 뉴스는 ‘포털이 차려준 밥상’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이 밥상은 늘 무료였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 뉴스는 왜 무료인가.
요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뉴스 사이트는 왜 이렇게 로그인을 시키는지” “포털이나 인공지능(AI)으로 검색하면 되는데 신문 구독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말을 듣는다.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가 회원 가입 화면을 만나면, 망설임 없이 뒤로 가기를 누른다는 고백이다.
실제 우리나라 성인의 대다수(98.5%)는 지난 1년간 뉴스에 어떤 형태로도 돈을 내지 않았다.(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유료 이용 의사도 거의 없다(97.5%). 온라인에서 유료 장벽을 만나면 무료 대안을 찾거나 그냥 뉴스를 보지 않는다. 독자가 인색해서라기보다, 무료로 제공받아 온 뉴스의 ‘경험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가 항상 무료였던 것은 아니다. 20여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신문을 두세부씩 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 환경으로 넘어오면서 광고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클릭과 노출이 수익이 되었다. 포털이 뉴스 유통의 중심이 되면서 언론은 콘텐츠를 대가 없이 내주었고 그 선택은 생존 전략처럼 보였다. 그러나 디지털과 모바일, 플랫폼이 광고를 흡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콘텐츠는 여전히 언론이 만들지만, 남는 수익은 점점 줄어들었다.
언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2022년 ‘더중앙플러스’를 출범시키며 2025년 초 누적 구독자 10만명을 넘어섰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회원 전용 프리미엄 콘텐츠를 강화했고, 한겨레는 요일별 기획물 ‘오늘의 스페셜’을 로그인 기반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여기에 더해 포인트 적립, 전용 온라인몰, 식품 판매나 마라톤 참가권 같은 생활형 혜택을 묶은 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했다.
요즘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인공지능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 의회 청문회에서 구글 지적재산권 책임자 록산느 카터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콘텐츠에 대해 인공지능 학습 비용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공개된 웹 콘텐츠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인공지능은 그것을 ‘통계적으로 학습’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뉴스가 무료이기 때문에 인공지능도 무료로 쓸 수 있다면, 그 생산 비용은 과연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할까.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기자의 노동, 취재에 드는 비용, 법적 책임과 검증의 시간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다만 그 비용이 광고와 노출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언론은 생존을 말하고, 독자는 불편을 말한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는다. 무료 뉴스에 익숙해진 독자에게 갑작스러운 결제 요구는 낯설고, 아무런 보상 없이 콘텐츠를 내어주는 구조를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언론의 주장 역시 현실적이다. 신문사들의 구독 모델은 독자를 밀어내기 위한 장벽이 아니다. 뉴스가 공공재라는 믿음과 뉴스가 노동의 산물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최소한의 보상이다.
뉴스는 왜 무료였을까. 뉴스 유료화는 언론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지만 건강한 공론장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이 질문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페이월은 장벽으로만 남고 무료 뉴스는 결국 가장 값비싼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뉴스의 가격을 다시 묻는 일은, 결국 뉴스의 가치를 다시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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