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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이 불러온 사법 불신, 그 발자크식 해법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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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관련자들이 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해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관련자들이 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해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박용현 논설위원



“사법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됨을 알리는 징표다.”



세계적으로 널리 인용되는 프랑스 문호 발자크의 이 말이 지금처럼 현실감 있는 경구로 다가오는 때도 없을 것 같다. 젊은 시절 법학을 공부하고 소송 실무도 경험했던 발자크는 19세기 프랑스의 법 현실을 날카롭고 폭넓게 관찰했고, 특권 엘리트의 도구가 된 사법체계, 타락한 법관, 권력에 집착하는 검사 등 법의 외피 속에 똬리 튼 부조리를 수많은 작품으로 고발했다. 그러면서 당시 만연한 사법 불신이 사회에 드리우는 음산하고 파괴적인 기운을 포착했을 것이다. 사법 판단을 ‘불신’하는 단계를 넘어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도 상상하기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 세상의 일단을 우리는 지난해 경험했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이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부정하고 그 집행을 물리력으로 막아 나섰다. 경호처 직원들이 기관총과 실탄을 준비하고 위력 시위를 했다. 무력 충돌이라도 벌어지면 어떡하느냐는 불안이 시민들을 떨게 했다.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밤에는 법원이 폭도들에게 유린당했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아슬아슬하게 집단 린치를 피했다. 사법 부정이라는, 사회의 종말로 향하는 문이 열리면 어떤 사태가 펼쳐질지 엿볼 수 있는 섬찟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의 원인이 사법 불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법 불신을 조장해 처벌을 회피해보려는 윤석열과 그 추종 세력의 의도적이고 억지스러운 도발이었을 뿐이다(12·3 비상계엄 자체도 사법부를 계엄사령관 통제 아래로 끌어내리는 사법 부정의 성격을 지녔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헌법 파괴와 함께 사법 부정이라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윤석열을 법원은 어이없게도 풀어줬다. 대법원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는 국민의 주권 행사를 가로막으려 했다. 지귀연 재판장은 내란 재판을 희대의 코미디로 만들었다. 물론 이진관·백대현 재판장의 법정은 근엄했다. 하지만 이런 중차대한 재판이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복불복 게임처럼 극과 극의 무게로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가 또 하나의 코미디였다.



지난 16일 윤석열의 체포방해 혐의에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영향력을 남용해 경호처를 사실상 사병화한 것”이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선고 형량은 특검 구형의 절반인 징역 5년이었다. 재판부가 밝힌 양형 기준상 권고형의 범위(징역 1년~11년3개월)에 비춰보면 최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투블럭남’으로 알려진 서울서부지법 난동범의 형량이 징역 5년이다. 그는 범행 당시 19살이었다. 대통령의 영향력으로 국가 무력을 동원해 법 집행을 부정한 죄책이 10대 난동자와 등가로 취급되다니 납득할 수 있겠나.



내란 이후 사법부의 행태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시민들의 사법 불신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전엔 시민들이 감지하지 못했던, 혹은 어렴풋이 감지했던 사법부의 내면을 좀 더 직시하게 됐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불신의 근원은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법관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건가?’ 여기에서 파생되는 질문들. 계엄의 밤, 그리고 탄핵의 물결이 거리를 메울 때 법관들은 어떤 감정과 염원을 가졌을까? 헌법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사람의 권리에 대해 평균적 시민보다 잘 아는(알아야 하는) 법관들은 어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걸까? 그런데, 내란의 사법적 단죄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이 쌓이면서 사법부는 이제 신뢰도에서 경찰에도 한참 뒤처지는 기관으로 전락했다(국가기관 신뢰도 경찰 48%, 법원 40%, 2025년 12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전국지표조사). 내란 1년은 사법부가 헌정과 법치의 수호자로 우뚝한 존재감을 드러낼 시간이었음에도 되레 불신의 늪을 파고 애써 기어들어가는 형국이다.



발자크는 이런 사법부를 어떻게 구출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위에 인용한 경구에 이어지는 말이다.



“현재의 사법 작동 방식을 깨부수고 다른 기반 위에 재건하라. 그러나 사법에 대한 신뢰는 포기하지 말라.”



사법 신뢰가 완전히 깨지는 날엔 사회가 종말을 맞는다, 그러니 어떻게든 사법 신뢰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과감한 조처라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에 따른 부작용의 우려보다 사법 불신의 잔존이 더 큰 사회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새겨들을 대목이다. 우선은 헌법 질서와 법치를 파괴한 내란 세력을 단호하게 징벌하고,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인적·제도적 폐단들을 고쳐나가는 데 과감히 나서야 한다. 발자크식 해법은 더 깊은 불신에 빠진 검찰의 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개혁 방안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난한 봉합’이 아니라 ‘불신을 걷어낼 확실성’이어야 한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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