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비치 공항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는 트럼프 대통령 |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출범할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를 사실상 유엔의 역할을 대체하는 국제 분쟁 해결 기구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을 드러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이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의 구상대로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분쟁' 해결을 목표로 한다는 이 기구의 '종신 의장'을 맡는다. 그는 회원국 선택권을 갖고, 모든 회원국을 대표해 단독 의사 결정을 내릴 수도 있어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20일 블룸버그 통신, AFP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개최 기간인 오는 22일(현지시간)까지 평화위원회 출범을 위한 헌장에 관련국들이 서명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국과 접촉하고 있지만 유럽과 이스라엘 등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초 평화위원회는 가자지구 전쟁 종식과 재건을 마칠 때까지 이 지역을 통치할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추진됐다.
하지만 미국이 마련한 헌장 초안을 보면, 이 조직은 사실상 세계 모든 국제 분쟁에 관여할 수 있는 '유엔 대체 기구'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초청국'들에 전한 헌장 서문은 평화위원회를 "분쟁의 영향을 받거나, 분쟁 위협에 처한 지역의 안정성을 증진하고, 신뢰 가능하고 합법적 통치를 회복시켜 지속적 평화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기구"라고 정의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여러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위원회를 유엔과 경쟁시키거나 평화위원회로 유엔을 대체하려는 명백한 시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위원회는 가자 재건 범위를 훨씬 벗어난 것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정세를 통제하려는 수단으로 이를 보고 있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미국의 구상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위원회 운영에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종신 의장'을 맡는다. 회원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적인 '초청'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는데, 회원국 임기는 3년을 넘지 못한다.
단 평화위원회 출범 첫해 회원국에 한해 10억달러(약 1조4천800억원) 이상을 기여금으로 내면 '영구 회원권'을 가질 수 있다.
평화위원회 의사 결정은 출석 회원국 과반수로 하되, 의장인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위원회 표결이 없어도 전체 위원회를 대신해 단독으로 결의안 또는 각종 지침을 채택할 수 있다.
의장은 평화위원회의 임무 수행을 위해 산하 기구를 신설하거나 해산할 배타적 권한도 갖는다.
위원회 산하에 '세계적 위상'을 갖춘 지도자들로 구성된 집행위원회(Executive Board)를 두고 운영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집행위원 해임권도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대 회원국으로 '초청'한 나라들의 대표성 기준을 두고도 평가가 분분하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까지 한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캐나다, 이집트, 카타르, 튀르키예, 호주, 아르헨티나, 요르단, 브라질, 파라과이, 인도, 파키스탄,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벨라루스, 그리스, 모로코, 슬로베니아, 폴란드 등 60여국이 초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 구상에 유럽과 이스라엘 등 미국의 동맹들은 대체로 당혹해하면서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위원회는 출범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며 "유럽은 의문을 제기하고, 이스라엘은 비판하고 있으며, 크렘린의 친구들은 이를 환영하고 있다"며 "(서방국) 우려의 상당 부분은 평화위원회 헌장 문구에 집중되어 있는데, 최종 의사 결정권을 트럼프가 갖게 됨으로써 영구 회원국이 낸 자금이 어디로 갈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먼저 공개적으로 평화위원회 참여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평화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프랑스산 와인에 2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면서 위협했다.
이스라엘도 가자지구 재건 문제를 우선 논의할 평화위원회에 참여할 잠재 회원국 명단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평화위원회 개념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타르, 튀르키예 포함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활동 공간이 위축됐던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 친러 국가들은 세계 외교 무대 중심에 진출할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한 유럽 관리는 블룸버그 통신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평화위원회 참여 초청을 받은 것은 웃음거리가 될 일이라면서 "러시아 지도자는 기꺼이 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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