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작년 11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유사시 일본의 군사 개입 발언 이후 고조된 중일 갈등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올 1월 초 중국과 일본을 연이어 방문하였다. 우리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과 일본은 이 대통령에 최고 수준의 의전을 제공하였다.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를 활용하여 이 대통령은 양국 모두와 양자 관계를 균형 있게 개선하였다.
중국 국빈 방문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한중 관계가 사드 이전으로 복원할 수 있는 계기의 확보이다. 작년 10월 말 경주 정상회담 이후 두 달 만에 다시 만난 양국 정상은 북한 비핵화·한반도 안보, 사드 이후 갈등,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 중국 내 한류·콘텐츠 규제 등 민감한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였다. 비록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의 확대에는 이견이 없었다.
수평적이며 호혜적인 경제 협력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은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다. 양국 정부는 상무 협력 대화 신설, 디지털 기술 협력, 중소기업 및 혁신 분야 협력, 산업단지 협력 강화 양해각서, 지식재산 분야의 심화 협력, 국경에서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상호 협력, 글로벌 공동 도전 대응을 위한 과학기술혁신 협력, 환경 및 기후협력 등을 포함한 총 14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161개 기업 416명의 경제사절단도 제조, 유통, 소비재, 콘텐츠, 식품, 소재, 부품, 스마트팜 등 여러 분야에서 총 32건의 기업 간의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미래 지향적인 협력 관계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양국 기업은 제조업 혁신과 공급망 협력, 소비재 신시장 진출, 서비스․콘텐츠 협력이라는 세 가지 방향에 합의하였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중국이 통용 허가 제도를 도입하여 우리 기업이 핵심 광물을 원활히 수급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는 것은 물론 녹색·디지털 전환과 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과제에 대해 실질적인 해법을 공동으로 모색한다. 소비재 시장‘제3국 공동 진출’은 글로벌 사우스 인프라·에너지·제조 프로젝트에서 한중이 역할을 분담하는 구상으로, 공급망 리스크 분산과 수출시장 다변화 수단으로 주목된다. 생활 서비스 분야에서는 양측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바둑이나 축구에서부터 드라마, 공연, 영화 등으로 점진적 단계적으로 문화 콘텐츠 교류를 확대해 나가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셔틀외교 차원의 실무방문이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자기 고향이자 지역구인 나라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을 유례없는 의전으로 환대하였다. 이 대통령의 방문이 다카이치 총리의 대외정책뿐만 아니라 국내정치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방일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동시에 자기 지역구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은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을 위한 정치적 동력을 강화하였다.
일본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양자협력이 교역을 넘어 경제안보와 첨단 과학기술을 포함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지난해 설립된 '한일 공통 사회문제 협의체'는 저출생과 고령화, 국토 균형성장, 농업과 방재, 자살 예방 분야의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공동으로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스캠 범죄를 비롯한 초국가 범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우리 경찰청 주도로 발족한 국제공조 협의체에 일본이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인적 교류 1,200만 명 시대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청년 세대 간 교류의 양적·질적 확대, 출입국 간소화, 수학여행 장려, 기술자격 상호인정 분야의 확대 등에도 의견이 일치되었다.
이 대통령은 방중과 방일을 통해 한중일 관계 개선을 위한 페이스 메이커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이 대통령은 중일 갈등에 대해서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보다는 균형과 중재를 추구하였다. 지난 5일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고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 대해 이 대통령은 8일 상하이 기자간담회에서“대한민국에 있어 중국만큼 일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직접 (시진핑 주석에게) 말씀드렸다”며 "우리의 역할이 필요할 때, 실효적으로 의미가 있을 때는 하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게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도 이 대통령은 중일 갈등에 직접적 개입보다는 지역 협력을 강조하였다. 지난 13일 “대통령님과 함께 일한 관계를 전진시키면서 양국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 공조화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졌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모두 발언에 대해 이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에서 “동북아 지역 한중일 3국이 최대한 공통점을 찾아 함께 소통하며 협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중국의 입장을 배려하였다.
동북아시아의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인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중국과 일본 사이의 견해차는 크다. 한중 정상회담의 모두발언이나 양국이 공개한 발표문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중국은 북한의 반대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 재개 중요성을 확인하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창의적인 방안들을 지속해서 모색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피력하였다.
반면,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이 대통령은 공동 언론 발표에서 “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 정책에 있어 긴밀한 공조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 대화 재개를 추구하고 있어 이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자제한 반면, 다카이치 총리는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대북 대응에 대해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한일, 한미일의 긴밀한 연계로 대응해 나갈 것을 재확인했다”발언하였다.
균형과 중재만으로는 한중 및 한일 관계의 개선을 한중일 협력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붕괴로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시대에는 삼국 협력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보여주는 비전이 필요하다. 이 비전을 제시한다면, 이 대통령의 역할은 동북아시아의 페이스 메이커에서 피스 메이커로 전환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
아주경제=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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