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워스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복귀한 지난해는 예측 불가능의 연속이었다. 그는 관세를 무기화해 동맹국부터 공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알래스카로 초대해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맞이했고, ‘고립주의자’란 평가가 무색하게도 이란 핵시설을 폭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지난 1년을 복기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새해 벽두부터 베네수엘라를 공격하고, 그린란드 영토를 강제로라도 뺏어오겠다는 야욕을 불태우고 있다.
스티븐 워스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19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1년 외교 정책을 묘사할 단어를 꼽아 달라고 하자 “깡패, 갈취, 광분, 근시안”이라고 답했다. 워스하임은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공동 창립자이며,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가 202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내일, 세계: 미국 패권의 탄생>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열광적으로 노골적인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동맹국들도 미국의 강압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 작전은 ‘힘이 곧 정의’인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하며 공격적으로 군사력을 휘두른 것이 베네수엘라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트럼프는 자신의 행동을 대의명분으로 포장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전임자들이 자유주의 질서 구축을 명분 삼아 일으킨 전쟁이 때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로 변질됐다면 트럼프는 노골적인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를 장악하려는 이유가 ‘석유’라고 대놓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는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을 포함한 다른 여러 국가의 주권 영토를 위협하고 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이는 ‘힘의 정치’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음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약소국에 통제권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이제는 동맹국조차 미국의 강압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트럼프는 중국이 강압적 행위를 더욱 쉽게 정당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러시아가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개발도상국)에 미국과 서방보다 덜 나쁜 존재로 보이기 위해 넘어야 할 기준을 한층 더 낮춰 놓았다.”
- 트럼프는 이란 핵시설 폭격과 마두로 생포 작전 성공 후 군사력 동원에 효능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린란드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한 트럼프가 앞으로 이를 어디까지 휘두를 수 있다고 보는가.
“트럼프는 대담해졌다. 그는 즉각적인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었던 일련의 공격을 명령했지만 아직은 반작용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첫 번째 임기 마지막 해에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하면서 시작됐다. 두 번째 임기 들어선 이란 핵시설을 타격하고 마두로를 생포했으며 마약 운반선으로 추정되는 선박을 격침하고 시리아와 나이지리아에 공습을 감행했다. 트럼프는 지상군 투입이라는 부담을 피하고 ‘한번 치고 빠지는’ 식의 군사 행동만 취함으로써 자신은 이전 대통령들을 괴롭혔던 수렁에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점점 더 야심 찬 작전을 명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행운이 언젠가 바닥날 것이 우려스럽다.”
- 미국의 그린란드 영토 야욕으로 ‘대서양 동맹’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는 대서양 동맹 분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럽 내부를 갈라놓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각 압박을 계속 강화해간다면 대미 안보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은 덴마크에 트럼프의 요구에 응할 것을 종용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유럽 국가들은 그러한 선택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유럽은 사실상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지고 미국이 그중 한 편에 서서 다른 편과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그린란드 사태가 어떤 결말을 맺든 나토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유럽국가들은 트럼프 집권기뿐 아니라 향후 다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더는 미국에 의존한 안보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 미국의 힘은 신뢰할 수 없을뿐더러 언제든 동맹국의 심장을 겨누는 단검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대서양 동맹의 미래에는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10년이 지난 10년과 같을 수 없다는 점이다.”
- 수년 동안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주요 전략 문서에서 ‘나머지 세계’로 취급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서반구를 최우선순위로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세 가지 층위를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트럼프 개인, 행정부, 그리고 세계다. 트럼프는 줄곧 미국에 가장 심각한 위협은 이민자·마약 등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것이라고 인식해 왔다. 그러한 세계관은 트럼프를 서반구 이웃 국가들과 충돌하는 궤도로 몰아넣어 왔다. 다만 서반구가 미국의 전략적 최우선순위로 올라선 것은 2기 행정부 들어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내에는 외교정책의 거의 모든 영역을 두고 경쟁하는 여러 파벌이 존재하는데, 서반구 문제만큼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겹친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같은 ‘우월주의자’와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을 선호하는 ‘절제주의자’는 미국이 자국과 가까운 지역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서반구는 미국이 유럽·아시아에서 지배적 위치를 상실한 상황에서 미국의 힘을 투사할 수 있는 신선한 공간으로 떠올랐다. 트럼프는 약한 상대를 다루는 것을 선호한다. 오늘날 미국은 예전 같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말하는 ‘우리의 반구’(서반구)에서만큼은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트럼프는 고립주의자라고 하기에 너무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고도 선언했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을 어떻게 특징짓겠는가.
“트럼프는 결코 고립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로부터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부터 무언가를 가져가길 원한다. 트럼프는 (거래주의자라기엔) 비용과 이익을 신중하게 계산하지도 않는다. 그는 항상 사업가라기보다는 쇼맨이었다. 그는 평화협상을 주재하는 동시에 선택적인 군사력 사용을 통해 미국의 힘을 과시하면서 ‘힘을 통한 평화’라는 자신의 비전을 연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의 안보를 떠맡아 왔다고) 불만을 늘어놓지만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 NSS에서 중·러에 대한 비판이 사라지자 강대국 경쟁 시대가 끝나고 세력권 정치 시대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본질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서반구를 미국의 세력권으로 재천명했다고 해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각자의 지역에서 세력권을 갖도록 허용할 의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 외교정책의 익숙한 위선은 ‘나에게는 세력권을, 하지만 너에게는 안돼!’이다. NSS는 중국을 향한 적대적 수사를 피하고 있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어떠한 양보도 제시하지 않는다. 미국이 정한 조건에서 공존을 받아들일 기회만 제시할 뿐이다.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강요하는 것도 러시아에 세력권을 부여해주는 것이라기보다 전쟁을 종식하려는 실용적인 시도로 보인다. 즉, 트럼프는 서반구로 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힘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가 대만에 대해 어떤 종류의 거래를 시도하거나 유럽에서 미국의 방위 책임을 줄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수십년 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군사적 존재감이 더 제한적이고 방위 공약도 줄어든 국가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최소한 아시아와 서반구에서는 여전히 주요 안보 행위자로 남을 것이다.”
- NSS에서 북한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2019년 ‘하노이 노딜’ 후 북한은 미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NSS는 그 현실을 반영한다. 내 판단으로,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거의 받아들인 상태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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