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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걸 계속 얘기하면 감정이 올라와서 대답을 잘 못할 것 같아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도중 감정적으로 격해진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반박하는 중이었다. 최근 고공행진하는 환율에 외환당국의 수급대책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통화량 책임론’이 한은에 얼마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 |
“제가 이걸 계속 얘기하면 감정이 올라와서 대답을 잘 못할 것 같아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도중 감정적으로 격해진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반박하는 중이었다. 최근 고공행진하는 환율에 외환당국의 수급대책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통화량 책임론’이 한은에 얼마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말 잇단 수급 대책과 강력한 구두 개입 등에 일시 진정됐던 원/달러 환율이 연초 다시 고공행진하면서 유동성 관리를 둘러싼 공방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시중에 돈을 너무 많이 풀어 환율을 끌어올렸다는 주장이 비판론자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자, 한은도 기자간담회와 블로그 글 등을 통해 이례적으로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20일 새벽 2시 원/달러 환율은 전장 서울환시 종가 대비 0.50원 하락한 1473.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정말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을까?
비판론자들은 정부와 한은이 시중에 돈을 너무 많이 풀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졌고, 그 결과 원화 가치 하락과 달러 수요 증가로 환율이 올랐다고 주장한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져서 환율이 올랐다’는 주장은 한은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만 정말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고, 그것이 최근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 환율이 올랐다고 주장하는 측은 M2(광의 통화량) 수치를 내세운다. M2란 통화량 지표 중 하나로 현금성 자산에 MMF(머니마켓펀드),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CD(양도성예금증서), RP(환매조건부채권), 2년 미만 금융채, 2년 미만 금전신탁 등 현금화하기 쉬운 상품을 포함한 것이다. 시중의 유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쓰인다.
한은 통계를 보면 근 몇 년간 M2 증가 속도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한은은 올해부터 M2를 ETF(상장지수펀드) 등 수익증권을 포함한 ‘구 M2’와 수익증권을 제외한 ‘신 M2’로 나눠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구 M2의 전월 대비 평균잔액 증가율은 8.4%였다. 이 증가율은 2024년 2%대에서 계속 우상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5.7% 이후 증가세는 더 가팔라졌다. 신 M2는 11월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이 4.8%로, 2024년 초 1%대 이후 현재까지 우상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증가율이나 기울기 모두 구 M2보다는 완만하다.
한은에서는 최근 증가율이 과거와 비교하면 구 M2나 신 M2 모두 높은 편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당시였던 2020~2022년 사이 M2 증가율은 11% 안팎이었다. 2009년도에는 17% 수준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 사이 증가율은 6~10% 사이에서 등락했다. 신 M2와 구 M2의 2005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장기평균은 각각 7.5%, 7.7%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M2 증가율은 2022년부터 빠르게 하락을 해오다가 최근 소폭 반등했지만 과거 평균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M2 비율을 토대로 현재 경제 상황에 비해 통화량이 과도하게 풀렸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은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M2 비율은 153.8%로, 미국(71.4%)이나 유로 지역(108.5%)보다 높았다. 이 수치는 2024년 2분기(152.2%) 이후 상승하는 추세다.
한은에서는 M2 증가율과 마찬가지로 시계를 더 넓혀보면 최근 GDP 대비 M2 비율이 결코 높은 편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2022년 말~2023년 초 GDP 대비 M2 비중은 156%대였다. 박 부총재보는 “이미 2022년 4분기 정점을 찍은 이후 소폭 하락하거나 횡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2022년부터 가계부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시작됐고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통화량 비율은 오히려 안정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미국보다 비율이 높은 것은 은행 중심의 한국과 달리 자본시장 중심의 미국에서는 자금이 주식 등으로 직접 흘러가기 때문에 M2에 잡히지 않는 유동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은의 설명처럼 최근 증가율 자체가 전반적으로 예년보다는 낮다고 해도, 최근 1~2년간 통화량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GDP 대비 M2 비율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 통화량 증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탓일까?
최근 통화량은 왜 늘었을까. 비판론자의 주장은 정부와 한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통화량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정부가 14조원에 육박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국민에게 지급하면서 시중에 과도한 돈이 풀렸다는 논리가 핵심이다. 내수 진작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 수단으로 돈을 과도하게 푸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환율 상승 등 역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은에서는 최근 통화량 증가의 주요 원인이 ETF를 중심으로 ‘수익증권’ 증가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M2 범위 밖에 있던 자금들이 M2 상품, 그중에서도 ETF에 대폭 유입되면서 M2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같은 돈의 분류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10월 M2의 평균잔액은 9월보다 41조1000억원 늘었는데, 같은 기간 수익증권은 31조5000억원 늘었다. 전체 M2 증가액의 76.6%가 수익증권에 의한 것이다. 특히, 전월 대비 수익증권 증가율은 10월 6.8%로, 2007년 11월(8.5%) 이후 17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박성진 한은 시장총괄팀장은 ‘최근 유동성 상황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해 5월 이후 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개인들이 어떤 통화지표에도 포함되지 않는 국내주식을 큰 폭 순매도했는데 해당 자금의 일부가 ETF 등 수익증권으로 유입되면서 M2 증가세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수익증권을 제외한 신 M2 지표의 증가율이 구 M2보다 낮은 것도 이런 점을 뒷받침한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구 M2와 신 M2의 증가율 차이는 2~4%포인트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올해 새 M2 지표를 도입한 것도 통화량을 적어 보이게 하기 위한 ‘꼼수’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한은에서는 IMF(국제통화기금) 개정 매뉴얼에 따라 가치 저장 기능이 낮은 수익증권을 배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은의 과도한 RP 매입이 통화량 늘렸을까?
한은이 최근 RP를 과도하게 발행한 것이 통화량 증가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RP란 한은이 금융기관의 보유 증권을 사들이면서 유동성을 공급한 뒤 일정 기간 뒤 다시 해당 증권을 매도하면서 유동성을 회수하는 방식의 거래를 말한다. 쉽게 말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한은의 정책 수단이다. 비판론자를 중심으로 “한은이 지난해 RP매입을 통해 488조원 규모의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은에서는 해당 채권은 대체로 2주 안에 다시 환매해야하는 조건이 달려있기 때문에 실제 지급준비금에 미치는 영향은 매입액이 아니라 평균 잔액을 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488조원을 공급한 것은 맞지만, 상당수 다시 회수했기 때문에 그만큼 돈이 풀렸다고 보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윤옥자 한은 시장운영팀장은 “1년간 매주 10만원씩 빌려 다음주에 갚은 사람의 지갑에는 520만원이 아닌 10만원만 남아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RP 평균 잔액은 15조900억원 수준이다.
오히려 금융기관의 지급준비금을 흡수하는 기조를 이어왔다는 것이 한은의 주장이다. 한은은 지난해 RP 매각을 비롯해 통화안정증권 발행, 통화안정계정 예치 등을 통해 총 107조9000억원의 지급준비금을 흡수했다. 공급 잔액보다 7배 많았다.
한은 관계자는 “일각에서 RP매입 규모를 단순합산해 한은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자그마한 ‘수도꼭지’만 보고 거대한 ‘수문’은 간과한 것과 같다”고 일축했다.
더 나아가 한은에서는 통화량 증가와 환율의 상관관계 자체도 최근들어 약해졌다고도 주장한다. 그보다는 달러 수급 불균형이 최근 고환율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은은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내국인의 해외투자액은 172억7000만달러 늘었는데,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68억1000만달러)보다 세 배가량 많았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박종우 부총재보는 M2 증가율과 환율 관계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상당한 상관성을 보였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방향성도 달라지고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김벼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