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헤럴드비즈] 벽란도에서 찾는 한중 경제의 미래

헤럴드경제
원문보기

최근 이뤄진 우리 정상의 중국 국빈 방문은 한중 관계가 단순한 복원을 넘어 새로운 도약대에 섰음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미중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작년 11월 경주 APEC 정상회담과 이번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단계적 로드맵은 양국이 실용적 협력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특히 161개사, 4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경제사절단의 동행은 그간 소원했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절박한 기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한중 교역의 뿌리는 깊다. 8~9세기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중심이었던 ‘신라방’은 우리 상인들이 중국 현지에 뿌리내린 네트워크의 효시였다. 고려 시대 ‘벽란도’는 송나라 상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드나들던 국제 무역항으로,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경제적 실리를 놓치지 않았던 지혜의 현장이었다. 조선 후기 ‘개성상인’은 서양보다 앞서 복식부기법인 ‘사개송도치부법’을 창안하며 명분보다 신용과 실용을 앞세워 대륙과의 교역을 주도했다. 이러한 벽란도 정신과 개성상인의 실용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도전 과제를 해결할 핵심 열쇠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적 계승뿐만 아니라, 교역의 ‘질적 구조 변화’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다. 지난 30여년간 한중 경제 관계는 명확한 수직적 분업 구조였다. 한국의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중간재와 자본재를 공급하면, 중국이 이를 조립해 완제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중국의 산업 경쟁력과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러한 구조는 이제 유효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중국은 이제 첨단 제조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우리와 대등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혁신 국가’로 변모했다. 이차전지, 인공지능(AI), 친환경 자동차 등 미래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은 매섭다. 과거와 같은 수직적 분업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중복 투자와 과잉 경쟁의 위험을 안고 있다. 앞으로의 양국 관계는 과거의 일방적 의존에서 벗어나 ‘수평적 협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제 한중 경제 협력은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는 ‘수평적 공생 관계’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아울러 중국 내수 시장의 질적 변화에 맞춘 서비스 및 고부가가치 소비재 공략이 필요하다. 중국의 산업 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제조 중간재의 설 자리는 좁아졌지만, 중산층의 확대와 소비 패턴의 변화는 새로운 기회다. K-콘텐츠, 프리미엄 식품, 실버·환경산업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소프트 파워’를 바탕으로 중국 소비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에서도 수평적 결합을 도모해야 한다.

한중 교역의 전성기는 언제나 사람과 기업이 자유롭게 오가던 시기였다. 신라와 고려의 상인이 황해를 가르고 개성 상인이 대륙을 누볐듯, 이제 우리는 더 깊고 넓은 수평적 협력의 바다로 향해야 한다. 실용과 상호 이익이라는 원칙 위에서 재정립될 한중 관계의 새로운 30년을 기대한다.

이봉걸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장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이혜훈 청문회 개최
    이혜훈 청문회 개최
  2. 2BTS 광화문 컴백
    BTS 광화문 컴백
  3. 3트럼프 관세 위협
    트럼프 관세 위협
  4. 4김연경 올스타전 공로상
    김연경 올스타전 공로상
  5. 5홍명보 오스트리아 평가전
    홍명보 오스트리아 평가전

헤럴드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