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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이 무얼 원하는지 안다"...발렌티노가 남긴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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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이 무얼 원하는지 안다. 그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어한다."


효율성이 창의성을 압도하고, 패스트 패션이 런웨이를 점령한 시대에도 이 고전적인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패션계의 마지막 황제’,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가 19일 별세했다. 효율과 대량생산이 표준이 된 패션 산업에서 그는 끝까지 ‘시간이 들어가는 옷’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발렌티노는 평생 기성복의 범람 속에서도 오트쿠튀르의 가치를 수호한 최후의 보루였다. 그에게 옷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천이 아니라 장인들의 집념이 투입되어 완성되는 하나의 ‘예술적 성역’이었다. 실제로 발렌티노의 드레스 한 벌을 완성하기 위해 로마 워크숍의 장인들은 평균 수백에서 수천 시간을 쏟아붓는다. 기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섬세한 레이스 장식과 ‘발렌티노 레드’를 구현하기 위한 치밀한 공정은 현대 패션 산업이 지향하는 ‘효율성’과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 완벽주의는 역설적으로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2008년 그가 은퇴한 이후에도 발렌티노 하우스가 흔들림 없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남긴 디자인 도안을 넘어, 하우스 전체에 이식된 ‘한 땀의 엄격함’이라는 유산 덕분이었다.

'발렌티노 레드'의 이 거대한 ‘붉은 제국’은 오로지 발렌티노의 심미안만으로 건설된 것이 아니다. 그의 곁에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경영 천재인 지안카를로 지아메티(Giancarlo Giammetti)가 있었다. 1960년 로마의 한 카페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패션 비즈니스 역사의 교과서로 불린다. 발렌티노가 오직 드레스의 실루엣과 자수의 정교함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지아메티는 브랜드의 상업적 토대를 닦고 글로벌 확장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발렌티노는 창조하고, 나는 그를 보호한다”는 지아메티의 원칙은 예술가와 전략가의 완벽한 분업 모델을 제시했다. 지아메티는 예술가의 예민함을 비즈니스 언어로 통역했고, 발렌티노의 창의성이 자본의 논리에 훼손되지 않도록 방패 역할을 자처했다. 이러한 듀오 시스템은 오늘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CEO가 공존하는 현대 명품 브랜드 운영 체제의 모태가 되기도 했으며, 천재적인 재능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글로벌 비즈니스 제국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자본의 논리가 예술을 삼키는 시대에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가장 고전적인 장인정신이 가장 강력한 브랜드 경쟁력이 된다는 진리를 몸소 증명해 냈다.

[이투데이/정지윤 인턴 기자 (chxma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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