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시와 에세이를 잘 읽고 싶다면
시나 에세이 낭송 포스팅을 종종 접하게 된다. 좋은 작품을 서로 나누고 느끼고 감상하는 소중한 자리다. 감성이 풍부하고 마음결이 고운 분들이 대개 음악과 사진들을 곁들이는 걸 볼 수 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 시와 에세이를 잘 읽고 싶다면
시나 에세이 낭송 포스팅을 종종 접하게 된다. 좋은 작품을 서로 나누고 느끼고 감상하는 소중한 자리다. 감성이 풍부하고 마음결이 고운 분들이 대개 음악과 사진들을 곁들이는 걸 볼 수 있다.
40여년 가까이 아나운서 생활을 했건만, 이 낭송 장르의 리딩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또한 매끄러운 리딩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의미와 감정이 전달되지 못했다면 그 또한 열없는 일일 터다. 내 생각으로는, 시(에세이) 낭송에서 보통 또는 그 이상 감각의 시민들일수록 대개 감정 과잉/잉여 감정 상태로 작품을 대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러면 외려 일정한 무드만 남고, 아름다운 언어와 표현이 묻힌다. 프로들은 리딩의 스킬이 탑재된 상태에서 시가 조준하는 분위기를 느끼고 잡아내는 게 일이라면, 아마추어는 반대가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시(에세이)를 근사하게 읽기 위해서는 '읽기 자체'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해하고 파악하는 로고스(logos,이성) 쪽 무게중심이 먼저다.
여러 방법을 뭉뚱그리는 강력한 팁은 바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아닐까 한다.
"어디서 분절하고(띄고) 연결하며(이어 읽으며) 강조할 것인가(힘주거나 살릴 건가)"
곧, 텍스트를 철저히 분석하고 맥락을 치밀하게 따져보는 기술과 감각을 키우는 훈련과 연습이다. 자꾸 살펴보고, 이리저리 시도하면 길이 보인다.
좋은 시와 멋진 에세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걸 잘 읽고 싶다는 의지로 이미 증명됐다.
즉, 감성/정서(파토스pathos)는 진즉 채워진 상태다. 이제 훌륭한 리딩을 위해서는 차갑게 파헤치는 능력을 쌓아야 한다. 다분히 역설적이다.
으레 따라붙으며 시를 위축시키는 높은 피치(pitch), 큰 볼륨의 배경음악도 방해 요소라고 나는 여긴다. 혁파해야 할 클리셰다.
◇ 공급자 마인드
"상자를 접어주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모 신문에서 본 광고 문구다. 상자를 접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나같이 손이 느린 사람한테는. 크기가 크거나 테이프라도 붙어있을 땐 더 그럴 것이다. 이 문구에는 짜증과 신경질이 배어 있는 듯하다. 자기 입장만 있다.
'송신자'와 '발신자' 위주의 메시지다. '수신자'와 '수용자'의 입장에서 표현해야 서로 좋을 것이다.
이렇게 바꿔야 한다.
"상자를 접어주신 마음, 기억하겠습니다."
◇ '외려'와 '되레'
잠시 집중력을 잃으면 금세 틀리는 말이다. '오히려'의 준말은 '외려'고 '도리어'의 줄임말은 '되레'다. '오히려'와 '외려'는 끝 글자가 '려'가 같다고 기억하면 좋다. 앞이 줄어든 거다.
'도리어'는 뒤가 오그라들면서 앞에 영향을 준 거다. '리어'가 '레'가 되고 앞은 '도'가 '되'가 된 셈이다. 파면 팔수록 '신묘막측'한 세계가 우리말이다.
◇ 빛나지 않은 화려함
"빛나지 않은 화려함, 완전한 몰입 그리고 강인함"
모 자동차의 광고를 보고 발끈했다. 서툴고 이상한 광고 문구라서다. 우선 차와 운전자, 주객이 섞여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빛나지 않는 화려함'? 어쭙잖은 역설이다. 빛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화려하지 않은 빛남'이 차라리 낫다.
본디 화려함에 패러독스를 구사하려면 '사치스럽지 않은' 정도가 와야 적실하다.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따위가 그 예다.
'완전한 몰입'의 주체는 누구인가? 차(車)이긴 힘들진대 운전자다. 운전자는 차의 작동/기능에 신경을 덜 써야 안전하다. 몰입까지 하면 외려 불안/위험하다.
맨 뒤의 '강인함'은 볼드체라 이게 더 중요한 가치임을 암시하지만, 왠지 공허하고 허전해 보인다. 앞의 둘은 수식/관형이 있는데 이건 부재하기 때문이다.
강인함 자체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너무 흔한 까닭이다.
끝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셋으로 하면 뒤로 갈수록 확장성이 있어야 설득적이다. 글자 수의 조절과 배치에도 신경 써야 한다.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 주어 생략과 피동 표현
"대한민국이 더 큰 행복으로 채워지도록"
모 대기업의 캠페인 광고다. 무턱대고 처음에 '이/가', '은/는'부터 앞세우는 관성이 잘못이다. 한국어는 주어의 생략이 자유롭다. 그럼으로써 피동을 피한다.
'차다'의 피동은 '채우다'까지만 자연스럽다.
'채워지다'는 이중피동으로 어색하며 영어적(英語的)이다.
이렇게 바꾸면 훨씬 좋을 듯하다.
"대한민국을 더 큰 행복으로 채우도록/채우기 위해"
◇ 정확한 대상
"차 막히고 애인 기다리고 슈퍼마켓 가서 줄 서고
영화 관람 기다리는 게 버리는 시간 아니에요.
진짜 버려지는 시간은 누구 미워하는 시간이에요."
모 신문에서 본 캠페인이다. 각 사람의 정신 건강에 대한 짧은 단상을 담은 의도는 매우 좋아 보인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방법이 의도를 덮을 수 있다.
일상 회화에서 어느 정도 용인되나, 글에서는 명확히 해야 한다. 길이 '막히는' 것이고 차는 '밀리는' 것이다.
표현은 '차 밀리고'로 바꿔야 한다.
◇ '의'가 겹칠 때
"일명 '먹고사니즘'의 시선의 예리함에 놀랄 때가 있다."
공무원 시험 응시자 증가에 대한 시선을 담은 모 신문의 칼럼이다. 매우 좋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의'가 연달아 나오는 건 문제 있다. 불가피할 때가 있다. 뉘앙스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여기서는 연거푸 '의'가 오는 건 지양해야 옳다.
일본어 '노(の)'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말은 짧고 줄이는 데 진심이라 'の'를 애용한다. 문장 길이를 단소화(短小化)하는 기능 때문이다.
그러나 절제해야 한다. '쓰지 말라'가 아니라 적게 쓰자는 거다.
이렇게 바꿔야 한다.
'먹고사니즘'의 예리한 시선에 놀랄 때가 있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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