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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생산적 금융, 은행에 떠넘길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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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생산적 금융’이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연초 기업대출이 이례적으로 감소했고, 금융권은 연체율 상승과 환율 불안, 자본비율 압박을 이유로 몸을 사리고 있다. 이를 두고 “규칙이 미비해 자금이 흐르지 않는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규칙의 공백이 아니라 역할의 혼선에 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기본 원칙이 있다. 민간 은행의 본질적 기능은 예금자의 돈을 지키는 신용중개다. 연체율이 오르고 환율 변동성이 커져 자본비율(CET1)이 압박받는 국면에서 대출을 줄이는 것은 ‘위험 회피’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합리적 판단이다. 첨단·벤처 산업은 태생적으로 고위험 영역이다. 이 위험을 민간 은행이 떠안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건전성 관리와 모험 자본 공급이라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를 한 주체에 동시에 부과하는 셈이다.

규제의 지연과 불확실성도 일부 원인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핵심은 아니다. 위험가중치(RW) 완화나 가이드라인 정비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규정이 아무리 명확해져도 차주의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신용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는 대출이 늘기 어렵다. 신용 위험이라는 경제의 1차 변수를 행정적 불확실성으로 환원하는 해석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답은 명확하다. 생산적 금융의 주체를 정직하게 재배치해야 한다. 고위험 영역에 자본을 공급하려면 누군가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 역할은 민간 은행이 아니라 정부와 정책금융의 몫이다. 산업은행·기업은행·성장금융·모태펀드 등 정책금융기관이 위험을 선도적으로 부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 자본을 유인하는 구조가 전면에 서야 한다. 민간 은행에는 고위험 투자를 강제하기보다, 정책금융이 만든 틀 안에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도덕적 해이의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더더욱 정부의 책임과 기준이 중요하다. 어떤 산업에, 어떤 조건으로, 어느 수준의 손실을 감수할 것인지 정책의 비용과 한계를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익은 민간이 가져가고 손실은 국가가 떠안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생산적금융은 지속될 수 없다.

생산적 금융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규칙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위험을 떠안을 주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자본의 흐름을 바꾸고자 한다면, 은행을 독려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정책금융이 앞장서 위험을 책임지는 구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고, 원칙이며, 상식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지난해말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지난해말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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